[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인건비 따먹는 사업부터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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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 단기성과 집착하는 한 창의적 연구결과 기대할 수 없어
과기정책 나열보다 실천이 중요
이정동 < 서울대 교수·과기정책 객원논설위원 leejd@snu.ac.kr >
과기정책 나열보다 실천이 중요
이정동 < 서울대 교수·과기정책 객원논설위원 leejd@snu.ac.kr >
지금이야말로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선진국 경제발전의 역사를 보건데 한 점 예외도 없는 사실이다.
과학기술분야에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비록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거의 같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것은 과학기술을 진작하기 위한 정책이 초당파적이고 중립적이라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공약으로 제시한 과제들의 실천을 미룰 이유가 결코 없음을 의미한다.
인재육성과 기초과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더 유연한 연구·개발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과학기술을 통해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혁신을 진작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하고, 지역 혁신체제를 보강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디지털 산업의 생태계를 강화시키고, 지식재산체제도 선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과학기술 관련 정책들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런 과제들은 당선자가 제시한 공약집에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지만, 채 담지 못한 많은 정책적 과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앞으로 전문가 집단에서 정리한 과제들을 더 수렴하고, 또한 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수렴하면서,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중 어떤 것들은 수년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해묵은 과제란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전 세계를 둘러보아도 희귀하게 남아 있는 후진적인 이과-문과 구분제도는 어떤가.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수십 년 됐지만 질기게도 남아 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창의적인 연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지만, 정작 출연연구소 연구자들은 인건비를 벌기 위한 단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창의적인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이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비정규직 박사 연구원들은 해가 갈수록 누적되고 있지만, 정원규정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역시 한두 해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기술 혁신과 관련된 예산에 대해 조정·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귀가 아플 지경이다. 몇 가지 예만 들었지만, 전문가들 간에 공감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복지문제처럼 여야 간 정파적 입장이 다른 것도 아닌데, 왜 같은 이야기가 메아리처럼 그것도 수년간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결국 다시 리더십 문제로 돌아간다.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과학기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핵심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아젠다를 국무회의에서 그 어떤 과제보다 자주 다뤄야 한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회의를 그 어떤 회의보다 앞서 직접 주재해야 하고, 그 어떤 현장보다 과학기술이 살아 있는 곳에 자주 나타나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을 중용해야 하고, 예산과 권한으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과학기술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리더십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뚜렷이 보여주어야 비로소 해묵은 과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이런 리더십의 배경이 있을 때라야 여러 부처를 가로질러 융합적으로 조정하고, 선제적으로 기획하는 정부조직도 그 원래의 취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
젊은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로 앞다퉈 뛰어드는 문화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지역경제가 살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진정 과학기술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선 사회의 모습이며, 이를 위해서는 바로 그 의지를 담은 대통령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
이정동 < 서울대 교수·과기정책 객원논설위원 leejd@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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