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19일 오후 5시30분. 한 중년 신사가 양평군립미술관 1층 벽면에 붙어 있는 방명록 게시판을 보며 미소지었다. ‘우아 완전 대박이야! 담에 또 올래’ ‘양평에 9년 살면서 가슴 떨리는 전시는 처음이었어요’ ‘Better than MOMA(뉴욕현대미술관보다 더 좋아요)’….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56·사진)은 관람객들이 써놓고 간 이런 소감들을 매일 오후 읽어보며 때론 보람을, 때론 문제점을 찾는다. 이제 이 일은 하루의 즐거움이 됐다.

개관 1주년 기념식(21일)을 앞두고 이 관장을 만나기 위해 양평군 양근리에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 지난달까지 양평군립미술관을 찾은 관객은 9만206명. 내달 초 1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연간 관람객 10만명은 제주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이중섭미술관과 비슷한 수준이다. 관장을 포함해 직원 수는 고작 8명이다.

성공 비결을 물었다. “미술관 문턱을 낮췄지요. 일반인들이 미술관을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어렵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개관 기념 첫 전시를 ‘마법의 나라, 양평’이라고 쉽게 지었어요. 입장료(성인 1000원·어린이 500원·양평군민 무료)도 낮게 책정했고요. 유아방, 수유실에 유모차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렇다고 작가 수준이나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에요.”

이 관장은 “대중 속의 예술, ‘퍼블릭 아트’를 미술관 운영 방침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예술이란 것이 어렵고 고매하다거나 애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1984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한 이 관장은 2009년 예술사업국장을 끝으로 퇴직할 때까지 25년간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해왔다. 퇴직 후 사단법인 ‘문화문’ 상임이사와 양평군 문화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김선교 양평군수로부터 제안을 받고 미술관을 맡게 됐다.

이 관장과 양평의 인연은 1995년 예술의전당 워크숍을 양평으로 오면서 시작됐다. 행사 후 우연히 들른 산중 카페의 바깥 풍경에 반해 한동안 소설가 구중관 씨가 운영하는 주말농장을 가꾸다 아예 양평군 서종면으로 이사해 17년째 살고 있다. 그가 양평 자랑을 들려줬다. “양평인구가 10만명 정도인데 그 중 예술인이 1000명이 넘습니다. 명실상부한 예술의 고장이 됐죠. 그러다보니 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미술관까지 만들게 된 것이고요.”

2000년 4월부터 12년째 매달 한 번씩 산중음악회를 열고 있는 ‘문화모임 서종사람들’ 대표이기도 한 이 관장. 양평군립미술관은 2009년 김문수 경기지사가 양평을 찾았을 때 양평 예술인들의 요청으로 건립됐다. ‘과연 이 시골에서…’라는 걱정을 딛고 “와보니 좋더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가족나들이 명소가 됐다. 지난 1년간 표본조사 결과 관람객 만족도는 97%, 재관람률은 42%, 주변 사람 추천으로 왔다는 방문객 비중이 50%에 달했다. 관람객 중 외지인 비중은 37%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루브르미술관이 그렇듯이 군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미술관이 됐으면 좋겠어요. 양평에서 시작된 ‘작은 날갯짓’이 국내 미술관들의 문턱을 낮추는 기폭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