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출판계에는 ‘힐링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자기 위안과 성찰, 긍정 등 자아를 주제로 한 자기계발·실용서들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출판계를 주도한 또 다른 키워드는 ‘멘토’였다. 대선과 함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에 대한 갈망이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쳐, 정치사회 분야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특히 《안철수의 생각》은 초판이 하루 만에 소진되며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미 와튼 스쿨에서 13년 연속 최고 인기 강의를 펼치고 있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도 주목받았다.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책은 에세이로는 최단 기간 100만부 돌파 기록을 세운 혜민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한국인 승려 최초로 미국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로 있는 혜민스님은 이 책에서 종교와 인종, 가치관을 뛰어넘는 인생의 잠언을 들려준다. 관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마음과 인생에 대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담고 있다. 배우자, 자녀, 친구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 하면 할수록 관계는 틀어지고 나로부터 도망가려고 한다는 것, 잠깐의 뒤처짐에 열등감으로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만의 아름다운 색깔과 열정을 찾을 것, 어떤 생각을 하는가가 말을 만들고, 어떤 말을 하는가가 행동이 되며, 반복된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지면 그것이 바로 인생이 되는 것이라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7개월 넘게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석권했다. (혜민스님 지음, 이영철 그림, 쌤앤파커스 292쪽, 1만4000원)

우리 안의 내향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시하는 《콰이어트》는 산업사회의 과다경쟁이 낳은 ‘외향성 이상주의’의 부작용과 그 해법을 말해준다. 조용한 책벌레 소녀였던 저자는 프린스턴과 하버드 법대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후 기업과 대학에서 협상기법을 가르치는 변호사가 됐다. 이후 ‘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걸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7년간의 연구 끝에 책을 펴냈다.

앨 고어, 워런 버핏, 간디, 로자 파크스 등 중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내향성이 사회와 만날 때 어떤 성과를 냈는지 분석했다. 인류학 심리학 뇌과학 유전학 등에서 내향성에 관련된 모든 연구와 실험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을 비롯한 현대를 살아가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작용들이 과연 무엇인지 심도 있게 다뤘다.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RHK, 1만4000원)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대한민국 남자들을 위한 책 《남자의 물건》도 화제였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의 전작을 통해 현대인들의 여가와 재미의 필요성을 흥미롭게 풀어냈던 김정운 교수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남자들의 삶에 주목한다. 불안하고 갑갑한 대한민국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음에 건강검진을 하듯 내면을 위로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구체적 해법은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계절이 바뀌면 눈물 나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때 삶은 즐거워

고 충만해진다는 주장이다. 1부에서 대한민국 남자들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는 유쾌하고도 가슴 찡한 위로를, 2부에서는 각계각층 다양한 분야 13명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정운 지음, 21세기 북스, 335쪽, 1만5000원)

‘하루 한 끼 식사가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역설한 《1일 1식》은 10년 넘게 1일 1식을 실천해온 저자가 최적의 식사법을 소개한 책이다. 공복 상태에서 ‘꼬르륵’ 하고 소리가 나면 몸이 젊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 56세의 나이에도 혈관 나이 23세, 매끈한 피부, 잘록한 허리를 유지해온 저자가 자신의 체험과 의학적 근거를 공개했다. 금주와 운동을 권하지 않으며, 엄격하게 하루 한 끼를 고집하지 않는 등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단기간에 최대의 효과를 보는 ‘나구모식 건강법’을 제시한다. (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240쪽, 1만3000원)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자기계발서도 인기를 끌었다. 어지러운 주위 환경은 인생 앞에 놓인 장애물이라고 강조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일본 최고 정리 컨설턴트가 말하는 정리의 힘이다. ‘한 번 정리하면 두 번 다시 어지르지 않는 정리법’을 공개했다. 단순한 공간 정리법이나 수납법이 아니다. 정리정돈 기술의 차원을 넘어 설렘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물건과 나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법을 알려준다. 정리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필요 없는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과 적절한 위치에 물건을 배치하는 것이다.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더난출판, 256쪽, 1만3000원)

반복되는 행동이 극적인 변화를 만든다는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 국내 1호 정리 컨설턴트 윤선현이 공간, 시간, 인맥 정리법을 다룬 《하루 15분 정리의 힘》도 사소한 습관의 힘을 재발견하는 실용서로 주목받았다.

미국 코넬대에서 30년간 ‘인간학’을 연구해온 저자 칼 필레머가 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은 ‘인생의 알짜 조언’이 담긴 책이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들은 총 30가지 지혜의 정수를 뽑아 책에 담았다. 시대가 강요하는 행복에 휘둘릴 필요는 없으며,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작은 것임을 깨닫게 한다. 잘 맞는 짝과 살아가는 법,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법, 나머지 인생을 헤아리는 법 등 인생의 현자들의 실천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칼 필레머 지음, 박여진 옮김, 토네이도, 340쪽, 1만4000원)

한국 만화계의 대표 스토리텔러 윤태호의 신작 《미생-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는 지난 1월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첫선을 보인 후 최장 기간 평점 1위를 지켰다. ‘만화가 아닌 인생 교과서’ ‘직장 생활의 교본’ 등으로 불리며 연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궜던 《미생》은 프로기사를 목표로 살던 청년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종합상사 인턴사원으로 취직하면서 시작된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노동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직장 생활을 바둑판에 비유했다. 사회라는 거대한 바둑판에서 두 집을 짓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도달할 완생을 향해 성실히 돌을 놓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윤태호 지음, 위즈덤하우스, 300쪽, 전 4권 4만4000원)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