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의 승부수 '사외이사 벽'에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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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 1년여 끌어온 ING생명 인수 무산
경영진·사외이사간 불신 커져 결국 표대결로
비은행 부문 강화 계획 차질…후유증 클 듯
경영진·사외이사간 불신 커져 결국 표대결로
비은행 부문 강화 계획 차질…후유증 클 듯
1년여를 끌어 온 KB금융지주의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가 무산된 것은 대다수 사외이사들이 반대 입장을 보인 결과다. 막바지 인수가격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9월께만 해도 반대하던 사외이사는 2~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수를 서둘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확산됐다.
실명을 밝히기 꺼리는 한 사외이사는 이사회 직후 “일부 사외이사들이 표결을 연기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어윤대 회장이 국제금융시장 관행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주장해 결국 표결에 부쳐졌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표 대결까지 가지 않고 경영진이 ING생명 인수를 원점에서 재고해주길 바라는 사외이사들이 많았지만 경영진의 요구에 따라 표결에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대치는 KB금융지주 최고경영진과 사외이사들 간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고경영진이 사외이사들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표결까지 갔다는 것이다.
반대표를 던진 한 사외이사는 경영진이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사외이사는 “어 회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힘이 너무 세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한 것이 사외이사와 KB금융지주 간 감정의 골을 더 넓힌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계에서는 독립성이 강한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지나칠 정도로 경영진과 각을 세우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KB금융은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가 분리된 데다 사외이사 비중이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높은 게 특징이다.
또 금융당국이 ING생명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국민은행의 배당에 제동을 거는 등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점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금감원은 KB금융지주 이사회의 ING생명 인수 관련 의결이 있을 것으로 예고됐던 지난 5일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어 회장의 술자리 소동과 관련해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ING생명 인수가 무산됨에 따라 KB금융지주는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또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올 3분기까지 KB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1조5651억원이다. 이 중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84.9%에 달한다.
금융계에서는 KB금융지주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추진될 우리금융 매각에 적극 뛰어들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추진하기 위해선 KB금융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이사회에서 표대결을 벌이는 사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서는 한 번 깊어진 양측 간 골이 메워지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외이사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려 앞으로 이사회에서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기업 풍토에서 사외이사들이 반대표를 집단적으로 행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11년 5월부터 올 4월까지 1년 동안 238개 상장 대기업의 이사회 상정 안건 5692건 중 사외이사 반대로 부결된 것은 13건으로 0.2%에 불과하다.
박신영/조재길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