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순강화(南巡講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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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중국인들은 중의적인 화법을 즐긴다. 최고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은유적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곤 한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권력서열 1위에 올랐던 2002년 마오쩌둥의 고택을 방문했다. 공산주의 원리에 충실할 것이란 의사의 표현이었다. 그는 집권 10년 내내 분배를 강조했다.
시진핑 총서기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첫 출장지로 남쪽의 광둥성을 택했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시 총서기는 4박5일간 선전 주하이 광저우 등을 방문한 뒤 엊그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본 곳은 소위 ‘남순강화(南巡講話) 코스’라 불리는 도시들이다. 1992년 1월 덩샤오핑이 ‘중국식 시장경제’ 제도화를 위해 개혁개방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 달간 순회했던 코스다.
시 총서기는 선전의 롄화산 공원에 올라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도 했다. 덩샤오핑이 이곳에서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보다가 “10년 안에 선전에서도 저런 불들이 켜져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 총서기는 덩샤오핑처럼 가는 곳마다 개혁개방을 강조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며 눈을 불을 켜고 개혁개방을 채찍질했던 덩샤오핑과 다를 게 없었다. 시 총서기는 이로써 그의 노선이 성장을 기반으로 한 발전이라는 것을 내외에 분명히 밝혔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등 극좌 노선을 따르는 일부 보수강경파에 대해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날렸다.
그러나 시 총서기의 남순강화는 덩샤오핑 때처럼 강력한 임팩트를 주진 못했다. 최고 지도자가 등장하는 행사 때는 붉은 카펫을 까는 전통을 깨버렸다든지, 호텔의 스위트룸이 아닌 일반 객실에 묵었다든지 하는 신선한 파격은 있었다.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속이 훤히 보이는 차를 타고 다니는 등 국민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열린 태도도 보였다. 하지만 그가 남순강화의 첫 도시인 선전을 방문했을 때 노동자들이 집단시위를 벌인 것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인쇄공장 노동자 3000여명은 선전의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8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물론 시 총서기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경찰은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 장면은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유포됐다가 즉각 삭제됐다.
시 총서기의 파격적인 친서민 태도나 개혁개방에 대한 의지는 빈부격차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가려버렸다. 이는 시 총서기의 덩샤오핑 따라하기가 매우 험난할 것임을 보여준다. 개혁개방 이후 30년간 중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은 급격히 달라졌다. 성장을 견지한다는 방향은 옳지만 30년 전 옷을 그대로 입히기엔 중국의 덩치가 너무 커졌다. 단순히 ‘덩샤오핑 따라하기’가 아니라 ‘시진핑의 길’을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시진핑 총서기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첫 출장지로 남쪽의 광둥성을 택했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시 총서기는 4박5일간 선전 주하이 광저우 등을 방문한 뒤 엊그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본 곳은 소위 ‘남순강화(南巡講話) 코스’라 불리는 도시들이다. 1992년 1월 덩샤오핑이 ‘중국식 시장경제’ 제도화를 위해 개혁개방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 달간 순회했던 코스다.
시 총서기는 선전의 롄화산 공원에 올라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도 했다. 덩샤오핑이 이곳에서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보다가 “10년 안에 선전에서도 저런 불들이 켜져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 총서기는 덩샤오핑처럼 가는 곳마다 개혁개방을 강조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며 눈을 불을 켜고 개혁개방을 채찍질했던 덩샤오핑과 다를 게 없었다. 시 총서기는 이로써 그의 노선이 성장을 기반으로 한 발전이라는 것을 내외에 분명히 밝혔다.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등 극좌 노선을 따르는 일부 보수강경파에 대해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날렸다.
그러나 시 총서기의 남순강화는 덩샤오핑 때처럼 강력한 임팩트를 주진 못했다. 최고 지도자가 등장하는 행사 때는 붉은 카펫을 까는 전통을 깨버렸다든지, 호텔의 스위트룸이 아닌 일반 객실에 묵었다든지 하는 신선한 파격은 있었다. 길거리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속이 훤히 보이는 차를 타고 다니는 등 국민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열린 태도도 보였다. 하지만 그가 남순강화의 첫 도시인 선전을 방문했을 때 노동자들이 집단시위를 벌인 것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인쇄공장 노동자 3000여명은 선전의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8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물론 시 총서기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경찰은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 장면은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유포됐다가 즉각 삭제됐다.
시 총서기의 파격적인 친서민 태도나 개혁개방에 대한 의지는 빈부격차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가려버렸다. 이는 시 총서기의 덩샤오핑 따라하기가 매우 험난할 것임을 보여준다. 개혁개방 이후 30년간 중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은 급격히 달라졌다. 성장을 견지한다는 방향은 옳지만 30년 전 옷을 그대로 입히기엔 중국의 덩치가 너무 커졌다. 단순히 ‘덩샤오핑 따라하기’가 아니라 ‘시진핑의 길’을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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