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회의(GCC)의 거점 바레인. 지난 4일 이 나라의 수도 마나마에 있는 바레인투자공사를 찾았을 때 노란머리 서양 신사가 마중을 나왔다. 중동사람이 나올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아일랜드’라고 답했다. 바레인 산업단지 관리 용역을 맡은 아일랜드 컨설팅회사의 직원이었다.

다음날 바레인경제개발청에 갔더니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핀란드 사람이다. 개발청의 홍보를 담당하는 회사는 영국기업이다. 바레인 정부 건물 곳곳에서 유럽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동이 아니라 유럽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일머니를 갖고 있는 바레인 정부는 관리 연구 홍보 등 각종 업무를 외국회사, 특히 유럽회사에 위탁하고 있었다.

바레인뿐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인근의 석유 부국들도 상당수 정부 업무를 유럽기업에 위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왜 한국기업을 찾아볼 수 없을까. 산업단지 관리업무라면 19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개발해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선 한국의 노하우가 아일랜드보다 나을 것인데….

현지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근시안적인 외교를 탓한다. 한국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99년에 바레인 대사관을 없앴다. 당시 바레인 왕세자까지 나서 “대사관 철수만은 말아달라”고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그 왕세자는 현재 국왕인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다. 지난해 한국대사관이 다시 세워졌지만 바레인 국왕이 갖는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두바이, 바레인 등 중동지역에서 30년간 사업하고 있는 오한남 H&H호텔 회장은 당시 “대사관 하나 유지하는 데 얼마의 돈이 든다고…”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중동국가의 왕족들은 서로 가깝게 지내며 정보를 공유한다”며 “유럽 국가들은 꾸준히 왕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오일머니를 벌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제 유가는 수년간 배럴당 100달러 주변에 머물러 있다. 세계의 돈이 중동으로 빨려들어간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이제 싸이와 삼성 때문에 중동사람 누구나 한국을 알지만, 한국은 중동을 너무 모른다”(유준하 주 바레인 대사)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윤선 마나마/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