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의 잇따른 양적완화로 풀린 글로벌 유동성이 국내로 대거 밀려들면서 원화 값(원·달러 환율)이 15개월 만에 최고(최저)를 기록했다. 환율 하락 속도 제어에 나선 외환당국의 직·간접적 개입도 무위에 그치고 있다.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원70전 내린 1079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08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9월9일(1077원30전) 이후 처음이다. 상당수 경제연구소들이 내년 평균 환율로 책정해 놓은 달러당 1080원 붕괴는 심리적으로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개장 초부터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달러 매물이 쏟아지면서 하락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때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성 달러 매수에 힘입어 낙폭을 줄이기도 했으나 외국인과 수출업체들의 지속적인 달러 매도에 재차 하락했다.

정부와 시장 안팎에서는 원화 강세 흐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당국의 시장 개입도 속도 조절 차원이지 추세를 바꾸긴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럽중앙은행의 무제한 채권 매입(OMT)과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로 풀린 풍부한 자금이 국내로 대거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지난 9월 이후 국내 채권을 4개월 연속 사들였다. 순매수 규모는 2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증권시장에서 6170억원어치를 순매도한 외국인은 이달 들어 89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날도 2787억원어치를 사들이며 8일 연속 ‘사자’ 행진을 이어갔다. 이 덕에 삼성전자는 장중에 사상 최고가인 150만원을 찍기도 했다.

외국인 자금의 국내 시장 유입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데다 미국 재정 긴축 협상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건실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도 외국인 자금 유입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일제히 상향 조정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내년 초 추가적인 등급 상향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