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일동제약 2대주주로…적대적 M&A땐 동아제약 꺾고 제약 1위
일동제약 2대주주로 올라선 ‘백신종가’ 녹십자의 행보에 따라 국내 제약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하면 현재 업계 1위 동아제약을 뛰어넘는 매출 1조원대 제약사가 탄생하게 된다. 작년에 동아제약은 매출 9073억원이었고, 녹십자와 일동제약을 합치면 1조원을 웃돈다(1조374억원). 조순태 녹십자 사장은 최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을 전향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동제약의 지분 구조는 취약한 상태다.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의 개인 지분은 6.42%에 불과하고,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5.47%) 등과 친인척·계열사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해도 27.19%다. 반면 이호찬 씨 외 4인, 안희태 씨 외 5인, 피델리티, 녹십자, 환인제약 등이 10% 안팎의 지분을 갖고 있어 이들의 합종연횡에 따라 언제든지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최근엔 우호세력 5명과 함께 지분 9.85%를 갖고 있는 안씨가 일동제약을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가 법원이 이를 기각하는 사건도 있었다. 안씨 등이 일동제약 측의 임원 선임건을 저지하려다 표결에서 지자 소송을 걸었고 또 패한 것이다. 또 다른 주요 주주인 이호찬 씨 외 4인도 우호-비우호 세력을 오가며 경영진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번에 녹십자로 넘어간 환인제약의 지분 177만주(약 7%)는 일동제약 경영진에 우호적이었다.

개인투자자들이 아닌 녹십자가 2대주주로 올라선 것은 일동제약에는 ‘양날의 칼’이라는 분석이다. 녹십자가 공식 입장대로 ‘단순투자’ 목적을 유지하면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다면 일동제약으로선 대립각을 세워온 개인 주주들에 대한 대항력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녹십자가 적대적 인수 의도를 갖고 다른 주주들과 연대한다면 일동제약으로선 방어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하면 시너지는 상당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녹십자는 백신·혈액제제에 특화된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갖고 있다. 올해 약값 인하로 거의 모든 제약사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났지만 녹십자만 유독 뛰어난 실적을 보이고 있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약값 인하 등 여파로 제약업계에 구조조정 요구가 커지고 있는 점을 볼 때 두 회사가 중장기적으로 합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증시에서 일동제약은 가격제한폭까지, 녹십자는 1.44% 올랐다.

이해성/오상헌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