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속 1평(3.3㎡)짜리 구두방에서 경영컨설팅을 하는 이재국 전 외환은행 본부장(62), 쪽방촌을 찾아 소액대출 상담을 하는 송장식 전 동원수산 대표(67) ….

금융권, 정부, 기업 등에서 현역 시절 ‘잘나가던’ 전문직 은퇴자들의 모임인 ‘희망도레미’ 회원들은 연말이 다가올수록 하루 일과가 더 바빠진다. 주위 어려운 이웃들의 소액 자금수요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자”는 구호 아래 12명이 모여 2009년 출범한 희망도레미가 지난 6일 정기총회를 열었다. 안건은 올 한해의 성과 보고와 내달 초부터 위탁경영을 맡게 된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증권사 임원, 기업체 대표, 지하철 역장, 고위 공무원 출신 등 31명의 이사로 구성된 희망도레미. 현재는 어느 정도 조직을 갖췄지만 그 출발은 소박했다. 이날 서울 충현동 희망도레미 사무실에서 만난 이재국 대표의 말이다.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아카데미’ 교육을 계기로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처음에 12명이 각자 300만원씩 출연해 임의단체로 출범했지요. 금융권 출신이 많아 간간이 시민단체의 소액대출 상담을 돕다가 2010년 마이크로크레디트(취약계층 대상 무담보 소액대출·MC) 전문 단체인 ‘신나는 조합’과 협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섰습니다. ”

마이크로크레디트 컨설팅과 사후관리를 시작하면서 겪은 원년 멤버들의 고생담도 들려줬다.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성은 있었지만 새로운 일을 하다보니 첫해는 거의 교육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대전에서 있었던 소상공인 컨설팅 교육 때는 6명이 여관방 하나 잡고 같이 잤어요. 단체 예산은 건드리지 말자며 1인당 5만원씩 걷었어요.”

가입비 명목으로 지금도 300만원(여성 100만원)을 내야 입회할 수 있는 비영리단체지만 오해도 많이 받았다. “작년이었어요. 어느 언론사에서 ‘전문직 은퇴자들의 수익사업 모델’ 취재를 왔더군요. 회원들이 무보수로 재능기부를 하는 단체라는 걸 알고는 머쓱해하며 돌아간 적도 있어요.”

희망도레미는 100% 소속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초기 가입비 외에 회원들의 각종 컨설팅 수입(1건당 평균 월 2만원) 중 교통비를 제외하고는 희망도레미에 기부된다.

주력 분야인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해 물었다. 곁에 앉아있던 송 전 대표가 답했다. “주로 1000만원 안팎의 소액 무담보 대출이지만 회수율이 95%에 달합니다. 확실한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시중은행 못지않죠. 몇 백만원 대출을 받은 사람이 열심히 해서 돈을 갚아나가고 생활이 나아지는 것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다시 이 대표가 거들었다. “간혹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출받은 사람이 잠적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가 가장 힘들어요.”

인생이모작지원센터 교육사업과 마이크로크레디트, 소상공인 컨설팅 외에 저소득층 대상 무료 결혼식 주례사업도 계획하고 있다는 이 대표.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기업별로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중 대학 학자금 대출이나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등은 희망도레미가 가고자하는 길이거든요. 양극화 문제가 화두인 시대에 열심히 살고자 하는 소외계층에 ‘희망의 도레미’가 되고 싶습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