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 숨결 그대로 심플한 가구…불황에도 매년 30% 고속 성장"
가구는 건설경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건설업계에 불황이 닥치면 가구업체들도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대전에 본사를 둔 원목가구업체인 인아트(사장 엄태헌)는 해마다 매출이 20~30%씩 늘고 있다. 직영점이나 대리점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불황에 강한 저가형 제품을 취급하는 것도 아닌데 꾸준히 성장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외환위기가 엄습한 직후인 1998년 2월.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가운데 한 청년이 부산 영도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뛰어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윙윙거리는 거친 바람 속에서 바닷물은 세찬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투신하면 시체도 못 찾는다던데….”

당시 29세이던 그 청년이 작년 매출액 200억원에 해마다 판매가 20~30%씩 신장하는 인아트의 엄태헌 사장(43)이다. 인아트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주목받는 가구업체 가운데 하나다. 단순한 디자인의 아름다운 원목가구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목 숨결 그대로 심플한 가구…불황에도 매년 30% 고속 성장"
이 회사는 12월 초 충남 논산에 대지 1030평 건평 480평 규모의 직영점인 ‘인아트스퀘어’를 열었다. 대전에서 논산으로 가는 대로변에 있는 이 매장은 단순한 가구전시장이 아니라 인테리어 건축설계를 망라한 복합매장이다. 뿐만 아니라 직영점 대리점 등을 매년 확충하고 있다. 백화점만 해도 롯데 현대아이파크 갤러리아 등 22곳에 입점했다. 엄 사장은 “지난 11월 일부 백화점에서는 우리 매장이 단위 면적당 최고의 가구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도다리를 거닐던 엄 사장은 어떻게 다시 일어섰을까. 충남 청양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집안의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경기도 고양에 있는 농협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시절 인테리어 소품을 취급하는 중소기업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이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그가 구매하는 소품은 날개돋친듯 팔려 나갔다. 소품에 대한 선구안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27세 되던 1996년 5월 첫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사명은 인아트무역이다. 엄 사장은 “중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인테리어용 소품류를 들여다 팔아 불과 1년 반 동안 10억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인가. 일부 상품을 잘못 선택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외환위기가 터졌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갚아야 할 수입대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불과 6개월 새 그동안 번 돈을 다 까먹고 빚만 6억원을 짊어지게 됐다. 이렇게 추락할 수 있는가. 그가 영도다리를 찾은 까닭이다.

‘외환위기나 환율이 문제가 아니라 무모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남을 탓할 필요가 없었다. 입술을 깨물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외환위기가 아시아를 휩쓸자 필리핀의 소품업체들도 일감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계룡산 부근의 소 축사를 빌렸다. 필리핀 출신 2명을 데려와 쇠를 자르고 용접해 철제대문과 울타리 등을 만드는 제조업을 시작했다. 3년 정도 열심히 땀을 흘리니 빚을 갚을 수 있었다. 2002년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인아트로 재출범시켰다. 종업원 7명의 중소기업이다.

엄 사장은 소품과 가구를 고르면서 미적 감각을 익혔고 그런 능력을 살려 직접 단순한 디자인의 가구를 설계하기도 했다. 2003년 ‘앤디(ANDY)’ 시리즈를 내놓으며 호평을 받았다. 원목에서 나오는 질감과 미니멀리즘을 결합한 제품들이 인기를 얻은 것이다. 이후 서울 부산 등지의 가구전과 말레이시아가구전에 출품하자 백화점 바이어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앤디시리즈를 출시한 지 불과 3년 만에 롯데백화점에 입점했다. 이후 충남대와 산·학·연 협력체제를 갖추고 말레이시아국제가구전에서 디자인상을 받으면서 점차 국내외로 판매를 늘려 나갔다. 2010년에는 싱가포르 ‘퍼니처헌터어워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공장은 말레이시아에 있는데 1공장(건평 800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2공장(건평 1600평)을 짓고 있다.

"원목 숨결 그대로 심플한 가구…불황에도 매년 30% 고속 성장"
이 회사가 꾸준히 성장하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두툼한 원목을 쓴다는 점이다. 엄 사장은 “고무나무 집성재를 쓴다”며 “두께가 일반 원목가구의 두 배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일반 중밀도섬유판(MDF)이나 합판에 무늬목을 씌운 제품에 비해 비싼 것은 물론이다.

엄 사장은 “원목은 방안의 습기를 빨아들인 뒤 건조할 때 뱉어내는 등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어 상류층 소비자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원목은 자체의 질감과 무늬결을 갖고 있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가 표방하는 기업의 슬로건도 ‘자연을 닮은 가구’다.

둘째, 단순한 디자인이다. 엄 사장은 “젠(Zen·禪)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회사의 젠 스타일은 장식을 최대한 없애고 선과 면만으로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디자인을 위해 2008년 리빙디자인연구소를 세웠고 공주대 가구디자인학과와 산·학·연 협력체제도 갖췄다.

셋째, 국내외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펴는 것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서울 부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의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바이어들과 직접 접촉하는 등 해외시장도 개척하고 있다. 엄 사장은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 중 70%는 한국으로 들여오고 나머지 30%는 싱가포르 중국 대만 일본 미국 크로아티아 아일랜드 등지로 수출한다”고 설명했다.

"원목 숨결 그대로 심플한 가구…불황에도 매년 30% 고속 성장"
엄 사장은 ‘더 숲(The SUP)’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더숲 브랜드도 내놓았다. 여기에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조립할 수있는 ‘DIY(Do It Yourself)’ 제품과 등나무제품, 섬유 소재를 가미한 제품 등이 들어 있다.

그의 꿈은 가구·인테리어·건설을 아우르며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가구를 맞춤형으로 제안하는 것은 물론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스톱기능도 갖추겠다는 것이다. 엄 사장은 “소비자가 가구 인테리어 등을 모두 해결하려면 수십 개 회사를 찾아다니는 등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이를 원스톱으로 해결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아름다움도 안겨주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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