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서아람 선수(현 한남대 골프레저학과 교수)의 결혼식 뒤풀이 장소에서 전미정 선수(31)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전미정이 파라다이스레이디스인비테이셔널에서 11언더파 61타를 몰아치며 국내 여자프로골프 18홀 최소타 신기록을 수립한 직후였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코스에서 무섭게 몰아치는 모습과 달리 그는 남의 말을 잘 듣는 성격이었다.

3일 한국여자프로골프 시상식이 열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10년 만에 다시 그와 마주앉았다. 특유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또래들에 비해 좀 늦은 중학교 3학년 때 골프에 입문한 그는 프로가 된 뒤에도 골프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인라인스케이팅 선수로 뛰다가 그만뒀어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니까 아버지가 골프를 한번 해보라고 권했죠. 박세리 프로가 미국에서 활약하던 시절이라 골프 인기가 높았죠. 하지만 골프에 바로 적응하지 못했어요. 일단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그는 “골프를 잘 치지는 못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프로가 됐고 그 뒤로도 그저 그랬는데 우승을 하고 나서부터 조금씩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5년 말 일본 퀄리파잉스쿨에 나갔을 때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경험 삼아 가서 봤는데 붙었어요. 원래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일본에 가니 저랑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제가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인데 연습 환경이 너무 좋았어요.”

국내에서 2승이 전부였던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자마자 2006년 3승, 2007년 4승, 2008년 2승, 2009년 4승, 2010년 3승, 지난해 1승, 올해 4승 등 총 21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고 올해는 상금왕에 등극했다.

좋은 성적의 비결로는 코치이자 형부인 김종철 프로의 도움을 꼽았다. “형부가 국내에 있을 때부터 코치를 맡아줬어요. 저를 가르치면서 언니(전미애)를 알게 돼 결혼했고 2008년부터는 아예 일본으로 건너와 전담코치가 돼 스윙을 봐줬죠. 올해 스윙이 익숙해지고 안정되면서 멘탈도 강해져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일본에서 “전상!”을 외치며 따라다니는 팬도 많다. “최근에 한 팬이 제 소속사인 진로재팬 로고를 만들어 모자에 붙이고 오셨더라고요. 너무 놀랐고 감동받았어요.”

일본에서 한국 선수들끼리는 자주 어울린다. 누가 우승하면 대회 끝나고 모여서 같이 밥도 먹고 격려한다. 올해 한국 선수들은 일본 대회 34개 중 역대 최다인 16승을 합작했다. 한국 선수들이 너무 잘해 일본 선수들의 견제가 없느냐고 했더니 “견제는 느껴지지 않고 한국 선수들이 잘하니까 더 열심히 하려고 해서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오히려 자극제로 삼고 있다”고 했다.

올해 미국 메이저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대회에 갔다오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올해는 일본 대회만 전념하려고 나가지 않았어요. 내년에는 나갈 생각입니다.”

소속사 대회인 하이트컵에 매년 나오는 그는 후배들의 ‘슬로플레이’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선수 한 명당 쓰는 시간이 길어요.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조금씩 더 쓰면 나중에는 엄청난 시간이 되지요. 일본으로 진출하려는 선수들은 플레이를 빠르게 하는 훈련을 해야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아직 결혼 생각은 없고 골프에 더 몰입하고 싶다고 했다. “시즌 4승이 최다승인데 이를 내년에 깨보고 싶고 장기적으로는 일본에서 30승을 채워 영구시드를 획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