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난 모교 총장] "소통과 나눔의 여성리더십, 기업 더 크게 만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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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이화여대 총장·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
여성의 사회진출 격려하는 김 총장 "여자로 안주하면 유리천장 못깨…포기 말아야"
고교때부터 사업 시작한 김 대표 "여성은 공존과 공감능력 뛰어나 창업에도 유리"
사회 / 허원순 지식사회부장
여성의 사회진출 격려하는 김 총장 "여자로 안주하면 유리천장 못깨…포기 말아야"
고교때부터 사업 시작한 김 대표 "여성은 공존과 공감능력 뛰어나 창업에도 유리"
사회 / 허원순 지식사회부장
국내 최초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여대는 한국 최초의 여성의사 박에스더를 비롯해 철학박사 김활란, 문교부 장관 김옥길, 변호사 이태영, 총리 한명숙, 헌법재판관 전효숙 등 각 분야에서 수많은 ‘최초의 여성’을 배출했다. 김선욱 총장 역시 최초의 여성 법제처장을 지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등 이화여대는 수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CEO가 만난 모교 총장’ 기획에서 김 총장과 이화여대가 파트너로 점찍은 CEO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김가영 생생농업유통 대표(26·사회학전공 05학번)였다.
김 대표는 2005년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지리산에 농촌활동을 갔다가 그해 농산물을 재배·유통하는 사회적 기업 ‘생생유통’을 설립했고, 5년 뒤인 2010년 그 식자재를 활용하는 분식 체인 ‘국대떡볶이’를 지인들과 함께 창업했다. 생생유통에선 대표를, 국대떡볶이에선 이사직을 맡고 있다.
김 총장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 꾸준히 키워온 김 대표야말로 이화여대가 지향하는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는 인재”라고 말했다. 그런 제자가 어찌나 자랑스러웠는지 김 총장은 대담이 진행되는 내내 ‘엄마 미소’를 띤 채 연신 김 대표에게 발언 기회를 양보했다.
▶사회=대학에서 배운 것이 창업에 도움이 됐나요.
▶김가영 대표=학생들의 소박하고 작은 목표에 큰 가치를 두고 지지해주는 학교 분위기가 있습니다. 1학년 때 농산물 유통으로 창업해 보겠다고 교수님들께 말씀드렸더니 ‘그래 거기에 네 길이 있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더 큰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면 지금처럼 사업을 키우지 못했을 것 같아요.
▶김선욱 총장=그것이 바로 이화여대가 여성 리더십을 키우는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학교는 많은 부분에서 국내 첫 사례를 배출했습니다. 거기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처음 갈 때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교육이 있었습니다.
▶김 대표=섭섭한 부분도 있습니다.(웃음) 2005년부터 사업을 하느라 휴학을 반복하다 보니 내년 봄에야 겨우 졸업합니다. 창업이나 취업한다고 해서 수업을 빠지는 게 용인되지 않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학을 올바르게 다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김 총장=학생이 본업을 소홀히 해선 안 되고 대학은 똑바로 가르쳐야죠. 남녀공학에선 밤을 새우는 실험 등 힘든 작업을 남학생들이 도맡아 하면서 여학생들이 대접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학생들이 당장은 편할 수 있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죠. 여대에선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자들에게 미룰 수 없습니다. 학문적 역량과 독립적 인성이 함께 다져지는 것이 이화여대의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여성으로서 사회생활에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김 대표=아주 많습니다.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남성 중심이니까요. ‘남성 중심이니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상명하복의 군대식 명령체계가 대표적이에요. 저희 직원들도 대부분 윗사람이 시키면 ‘그냥’ 실행합니다. 왜 그러냐고 하면 ‘원칙이니까’, ‘전례가 있으니까’라고 하죠. 많은 문제들이 각기 다른 상황에 똑같은 원칙과 전례를 우겨넣으려고 하면서 벌어집니다. 그럴 때 다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대화하고 토론하다 보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김 총장=보험업계 최초 여성 CEO인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사장이 이화여대 동문입니다. 손 사장이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은 아주 간단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얼마나 포기해야 할 상황을 많이 겪었으면 이런 말을 할까 싶습니다.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아직 원칙과 합리성을 따지는 남성 중심의 문화가 대부분 조직을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상대방과 공감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사람 중심의 문화가 절실합니다. 나눔과 섬김,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죠.
▶사회=굳이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이유는 뭔가요.
▶김 대표=고등학교에 다닐 때 창업을 했습니다. 정보기술(IT) 프로그래밍 기업이었어요. 그때 ‘내 한 몸은 먹고살 수 있겠구나. 대학에 가선 나보다 남을 위한 길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산물 유통마진이 30~40% 되는데 농활 때 농사에 참여해 보니 마진을 20%대로 낮추고 소비자에게 싸게 공급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여성으로서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요. 그래서 이화여대 사회과학부를 택했습니다. 국대떡볶이는 농산물 판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좋은 식재료를 찾는 사람을 만나게 됐고 같이 회사를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됐죠.
▶김 총장=김 대표의 생생유통은 친환경 농산물을 적당한 가격에 사서 농민들이 일정 수준 이상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팔 때도 적당한 가격에 팔아 소비자들이 건강을 지키면서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국대떡볶이는 생생유통이 공급하는 좋은 식자재를 쓰고요. 이런 모델로 8년 만에 두 회사 합쳐 직원 100명, 연 매출 130억원의 기업이 됐다는 건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면서도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죠.
▶사회=여성 리더십과 사회적 기업이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김 대표=기업의 목표는 성장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소통과 공감, 나눔, 윤리성 등 여성 리더십의 대표적인 가치들이 기업을 더 지속적으로 클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떡볶이 매장에는 ‘외부 음식 환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고객을 기분 좋게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런 것도 효율성과 결과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남성 리더십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김 총장=이익을 내면 일반 기업이고 이익을 다 사회에 환원하면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재료 공급자와 제품 소비자, 기업 구성원이 ‘더 나은 삶’이라는 공동의 목표 의식을 갖는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요. 여성들이 유난히 사회적 기업을 많이 창업하는 이유도 공존과 공감을 추구하는 여성 리더십과 관련이 깊다고 봅니다.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여성 특유의 리더십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사회=여성 리더를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합니다.
▶김 총장=여성학이나 여성 리더십 형성을 도와주는 강의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126년간 여성을 가르친 역사와 함께 총장, 교수의 절반, 동기 모두 여성이라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문제로 고민하며 찾아온 제자들에게 우리 교수들은 ‘잠시 휴직을 하더라도 일을 그만두진 말아라. 네가 가는 길을 후배들이 보고 있다’고 합니다. 수업이든 교내 활동이든 모든 영역에 ‘여성이라고 못 할 것 없다’는 자립정신이 녹아 있습니다. 4년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리더십을 체득하는 것이죠.
▶김 대표=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리더와 리더십은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학들이 설정한 리더의 모습은 너무나 비슷합니다. 모든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보다 조금 더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단계적으로 고민하면서 발전해 왔지 ‘최고가 되겠다’고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다양한 리더상을 개발하고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사회=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해 주시지요.
▶김 대표=대학생들이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젊은이들이 기성 세대보다 환경이 좋은 건 분명하지 않습니까. 부모님 세대가 이뤄놓은 것을 다 누리면서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하는 건 무리가 있죠. 윗세대와 소통하는 것도 우리 세대의 몫입니다. 기성세대에게 요구하기만 하는 건 부모님이 저희를 보고 나약하다고 지적만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김 총장=학생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용감해졌으면 합니다. 실수와 실패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입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좌절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한 배움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선욱 총장은 이화여대 법학과 71학번으로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모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0년 14대 총장에 선임됐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원장, 한국공법학회 부회장, 법제처장,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가영 대표는 2005년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했다. 그해 여름 지리산 농촌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친환경 농산물 유통업체 ‘생생농업유통’을 설립했다. 2010년에는 (주)국대에프앤비(프랜차이즈명 국대떡볶이)를 지인들과 함께 창업했다. 기업 경영과 학업을 병행하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정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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