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에 새로운 창조성이 필요…'도전! 골든벨'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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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카페
세계적 오디션 열풍의 발단은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라 할 수 있다. 휴대폰 판매원이었던 폴 포츠를 발굴해 세계적 스타로 만들고, 바에서 노래 부르던 수잔 보일을 여성 보컬리스트로 만든 그 프로그램이다.
멀리 영국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어떤 연유로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앞다퉈 흉내내는 대표 프로그램이 됐을까.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이렇게 남이 만들어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밥상을 빌리는 데도 돈을 내야 한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방송포맷이라는 상품을 구입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마다 회당 수백만원의 로열티를 내고 있다.
영국은 유구한 역사 속에 저장된 콘텐츠가 탁월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파격이 쉽게 시도되는 나라다.
해리 포터가 고성에 들어가 마법을 배우는가 하면, TV 화면을 달고 다니는 텔레토비가 활개치는 나라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충돌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영국이 가장 앞서는 분야 중 하나가 방송포맷 사업이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가장 활발한 방송포맷 수출국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댄싱 위드 더 스타’, ‘코리아 갓 탤런트’, ‘탑기어 코리아’, ‘엄마를 바꿔라’ 모두 영국에서 입양한 방송포맷이다.
영국이 방송포맷을 포함한 문화사업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오랜 국가적 노력의 산물이다. 영국은 1998년부터 자국의 문화와 창조적 자산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이끄는 견인차로 활용했다. ‘창조산업’이라고도 불리는 영국의 문화 콘텐츠산업 성장률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동기간 영국 전체 경제성장률의 두 배가 넘는 6.9%에 달했고, 고용규모는 2007년 기준 약 200만명에 이르렀다.
한국도 유구한 역사 속에 저장된 콘텐츠가 풍부하면서 동시에 파격이 쉽게 시도되는 나라다. 최근 들어 드라마, 영화 속 사극 열풍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부터 왕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기록한 실록이 수백 권에 달하는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 속에는 거의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발굴을 기다리며 매장돼 있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인 K팝의 인기, 퓨전사극 열풍 등 여러 가지 밝은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창의성을 깨워 잠재된 콘텐츠를 현대적 문화상품으로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을 뿐, K팝과 드라마 말고도 우리의 방송 프로그램이 적잖이 팔려나간다고 한다. 중국, 베트남으로 수출된 ‘도전! 골든벨’의 경우 방송포맷이 수출됐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세계 여러 나라 방송국이 퀴즈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도 ‘도전! 골든벨’이 낙점을 받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존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서로를 상대로 경쟁하는 것과 달리 ‘도전! 골든벨’은 학생들이 제작진을 상대로 게임을 진행한다. 한 학교의 학생 100명이 출연해 서로를 격려하면서 문제를 풀고 전교생과 선생님이 함께 기뻐하고 또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경쟁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외국인의 눈에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바닥에 줄지어 앉아 문제를 푸는 모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과거시험 모습이다. ‘도전! 골든벨’이 천편일률적 퀴즈쇼와 차별화된 것은 이런 우리만의 독특함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전업 가수들의 노래 배틀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가수다’의 방송포맷이 100만달러에 미국과 중국으로 수출됐다. 가수 지망생들의 성장기 일색 오디션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독창적인 형식을 시도해 인기를 끌었던 ‘나는 가수다’가 외국 방송인의 눈에도 신선하게 보였던가 보다.
가장 크게 성공한 방송포맷은 ‘우리 결혼했어요’일지 모른다. 인기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에 기반한 이 프로그램은 많은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주면서 인기를 누렸고, 이제는 일본의 제작사와 함께 전 세계 41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우결 세계판’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가수 한 명, 드라마 한 편이 인기를 끈다고 해서 문화강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형같은 외모의 여가수들이 줄지어 서서 로봇처럼 같은 춤을 추는 모습으로 언제까지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신을 복제하고 소비하는 한류는 머지않아 신선함을 잃고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잠재된 콘텐츠를 발굴해 현대식으로 재포장하는 창조적 노력이 요구된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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