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법정에서 자신의 재산 관리를 외부업체에 위탁했다고 진술했다. 재벌 총수가 경영권 유지와 직결되는 재산 관리를 회사 내부 조직이 아닌 외부에 맡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 회장 자산은 보유 주식가치만 1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원범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최 회장은 피고인 신문 도중 “최고경영자로서 그룹 경영 전반에 오해를 빚어 참담하다. 얼마 전 개인 재산을 외부업체에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회사 재무 담당자가 불편하더라도 개인 재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면 외부업체에 요청해서 받게 할 정도로 관리 주체를 분리시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외부업체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또 “2003년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풀려난 후 투명한 경영이 회사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관재팀에 재산 관리를 일임했는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됐다”고 말했다. 계열사 자금의 펀드 출자에 직접 관여했다는 공소사실에 관해서는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450억원을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를 통해 김원홍 씨에게 송금했다는 사실은 2011년 12월이 돼서야 알았다”며 횡령 혐의를 부인하는 기존 진술을 되풀이했다.

이날 피고인 신문을 끝으로 대부분 공판 절차가 끝났다. 오는 22일 결심공판에서 최후변론과 검찰 측 구형이 있을 예정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