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KAI) 인수전이 본격화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대한항공의 적격성 여부에 논란이 일고 있다.

본입찰을 불과 20여일을 앞두고 있어 KAI의 연내 민영화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KAI 노동조합은 지난달부터 국회 국방위원회를 방문하는 등 매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KAI 민영화 이달말 윤곽…23일 실사 27~29일 본입찰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KAI의 매각 결정은 이달말 모든 윤곽이 드러난다. KAI의 내부 실사를 진행중인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은 오는 23일까지 인수를 위한 준비 작업을 마무리짓고, 27~29일 중 본입찰에서 경쟁할 예정이다. 우선협상대상자는 본입찰 이후 수일 내 결정된다.

대한항공은 30여명의 대규모 실사 인원을 직접 투입해 강력한 인수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현대중공업은 2~3명에게 실사 책임을 맡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매각 대상인 KAI 노조는 물론 항공업계 전문가들까지 잇따라 대한항공을 인수 부적격 업체로 지목하고 나선 것.

◆대한항공, KAI 조종사 결격사유?…부실재무 외자유치 등

대한항공의 재무 리스크에 대한 관계자들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높은 부채 비율을 이유로 대한항공의 KAI 인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산업은행이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견해가 곧 KAI 인수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시장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한항공은 또 이러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해외 업체 투자 계획을 내놨다. 이 회사는 "해외 항공업체로부터 공동투자를 약속 받았다"면서 "KAI 인수 자금과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항공업계 관련 전문가들은 그러나 외자 유치에 대한 대한항공의 계획이 자칫 국내 항공우주산업을 퇴행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 유출 등이 그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KAI는 주요 방위사업체로 정부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기업으로 외국인 보유지분도 10% 미만으로 제한돼 있다"며 "만약 외자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KAI의 경쟁 상대인 외국 기업들이 국내 항공우주산업을 위한 장기·대규모 투자를 결정할지 여부가 불투명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현재 실사가 진행 중인 단계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외자 유치 등 자금 조달 계획을 공개하기에는 어려운 단계"라고 설명했다.

지난 3분기 별도 기준 대한항공의 부채는 18조1709억원, 부채비율은 817%로 나타났다.

◆대한항공-KAI 합병 시 '구조조정 후폭풍' 우려

대한항공은 KAI 인수 이후에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박고 있다. 일각에서는 KAI 노조 등을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KAI의 전문 인력이 필요해 인수에 나선 것이며 항공기 제조 인력은 현재 대한항공도 모자라기 때문에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실제 합병 이후 인력 조정과 매출 증가 효과를 고려할 경우 사실상 구조 조정은 필수적이란 지적이다.

KAI의 지난해 매출이 1조3000억원이었으며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의 매출은 5400억원에 불과하다. KAI의 종업원수는 3000여명,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2500여명 가량이다. 1인당 매출액만 두고 보면 KAI가 4억3000만원, 대한항공은 2억1000만원으로 격차가 크다.

KAI 노조와 일부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 두 회사가 합병하게 될 경우 인력은 두 배로 늘어나지만 매출은 40% 증가에 불과해 구조조정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만약 대한항공의 주장대로 KAI측 구조조정이 없다면 대한항공 측의 인력감축이 우려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증권업계 "KAI 주가 고평가 주장이 자금력 한계 반증"

인수·합병(M&A) 이슈로 주가에 민감한 증권가(街) 애널리스트들도 대한항공의 높은 부채비율을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KAI의 현주가에 대한 대한항공의 고평가 지적이 자금력의 한계를 가늠하게 만든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업종을 불문하고 매우 높은 수준"이라면서 "운송업이라는 장치 산업의 특성상 높은 레버리지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지금까지 외형 성장과 같이 차입금이 지속적으로 늘었다는 점은 재무구조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라고 판단했다.

또 대한항공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제시하고 있는 KAI 주가 고평가 주장도 자금력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

그는 "KAI 인수 금액에는 T-50, KT-1, 한국형 기동헬기 및 무인기 등 수조원의 개발비용과 시간, 인력이 투입돼 축적된 기술력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라며 "가격을 두고 왈가왈부 하는 행태는 항공우주산업의 발전 가능성 및 미래가치를 무시하는 것으로 시장에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이미 2003년 당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의 KAI 지분(2596만주, 전체지분의 28.1%)을 인수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납입을 앞두고 액면가인 5000원(인수금액 약 1300억원)이 고평가됐다고 주장, 당시 딜(거래)을 무산시킨 바 있다.

한편 KAI 매각 대상 지분은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지분 26.4% 가운데 11.41%와 삼성테크윈(10%), 현대자동차(10%), 두산그룹(5%), 오딘홀딩스(5%), 산업은행(0.34%)의 지분을 합친 41.75%다.

이 지분의 인수 적정 가격은 최근 3개월 평균 종가를 기준으로 1조1000억~1조2000억원으로 책정되고 있으며 경영권 프리미엄을 30%로 가정하면 1조4000억~1조5000억원 정도로 산정되고 있다.

한경닷컴 정현영 / 최성남 기자 sul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