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우리 신한 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뚜렷한 차별화 전략없이 경쟁 은행의 고객을 빼앗는 방식의 영업에 주력하면서 붕어빵처럼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은행들이 글로벌 경쟁에 나서지 않으면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우려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 체제가 갖춰진 것은 2002년이다. 외환위기 전까지 난립했던 수십여개의 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대형 은행이 나왔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간 합병으로 탄생한 한빛은행은 우리금융지주 설립에 따라 2002년 우리은행으로 출발했다. 국민은행은 2001년 말 주택은행을 합병해 2002년 소매 부문 강자에 올랐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이 무렵부터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2002년 4대 은행의 기업대출 규모는 은행에 따라 최대 세 배까지 차이가 났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 4대 은행의 기업대출 규모는 비슷해졌다. 외환위기 전에는 대기업 위주였던 기업금융 시장이 재편되면서 은행들이 일제히 중소기업 대출영업에 주력했다. A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신용도를 직접 평가하는 모델을 개발하기보다는 쉽게 담보를 바탕으로 한 영업에 의존 하다보니 기업금융 쪽의 역량 강화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10년 전 은행별로 두세 배가량 차이가 났던 가계대출 분야에서도 은행 간 차이가 줄어들었다. 국민은행이 102조원 규모로 가장 큰 가운데 하나(외환 포함) 68조원, 신한 64조원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비슷한 구조의 상품들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경쟁 우위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B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놔도 금세 다른 은행이 이를 모방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 부문도 마찬가지다. 하나(외환 포함) 104조원, 신한 99조원, 우리 93조원 등으로 엎치락 뒤치락하는 양상이다. C은행 관계자는 “은행 상품 간에 차이가 거의 없어 고객들이 거래은행을 선택하는 데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 당국의 지나친 간섭도 차별화된 경영을 막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노시형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감독 당국이 영업 전략 등에 간섭하다보니 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작년 8월에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라는 금융감독 당국의 지시 탓에 일부 은행이 아예 대출을 중단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불확실한 지배구조로 인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단기 성과를 내는 데 치중하게 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내 은행들이 해외 시장 개척보다 국내에만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원근 KB경영연구소장은 “뻔한 국내 시장에서 경쟁을 하다보니 동일한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은행들이 세계 무대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은행의 해외 부문 수익 비중은 평균 3~4%에 불과하다. 양 소장은 “최근 상황이 안 좋아진 유럽계 은행들이 아시아에서 잇따라 철수하는 틈을 타 일본계 은행들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은행의 해외 영업에 필요한 달러를 저리로 공급하는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일규/이상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