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 아닌 가치ㆍ정책의 연합. 2012년 대선 후보 단일화와 2002년 11월 단일화를 구별 짓는 가장 큰 차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는 6일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단독 회동, 후보등록일(25~26일) 이전에 단일화를 하기로 합의하며 단일화 논의의 첫발을 디뎠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문, 안 후보는 가치와 정책의 연합을 강조하며 10년 전 민주당 노무현-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실패한 단일화'를 넘어서고자 노력해왔다.

2002년의 단일화는 정치공학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보 성향인 노 후보와 보수 색채를 띤 정 후보의 단순한 인물 결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 후보가 대선 하루 전날 대북관계 등 정책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 후보 지지 선언을 철회하면서 단일화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반면 2012년의 문, 안 두 후보는 정치적 성향이 비슷해 범야권으로 분류될 뿐 아니라 이들에게는 '새누리당의 집권 연장 반대'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 후보 측은 '가치 연합'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단일화 논의를 요구해왔고 지난 2일에는 단일화 논의 없이 정책 논의라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말을 아끼던 안 후보 역시 지난 5일 "서로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혁신에 대해 합의하면 좋겠다"며 문 후보와의 만남을 전격 제안했다.

실무진 협의 없이 문, 안 후보가 직접 만났다는 것 또한 2002년과 차이가 난다.

2002년에는 노-정 후보의 대리인들이 먼저 만나 이견을 조율하고 두 후보가 최종적으로 합의안을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안 후보가 문 후보와의 단독 회동을 제안한 이후 비서실장 간 회동 시간 및 장소 선정 외에는 별다른 협의가 없었다.

이날 문-안 후보는 후보 등록일 이전에 단일 후보를 결정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협의해 나가기로 하는 등 첫 출발부터 달랐다.

문, 안 두 후보가 처해있는 정치적 상황도 1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2002년은 김대중정권의 말기로 각종 비리가 잇따르면서 반여(反與)정서가 팽배했지만 문, 안 후보는 국정심판론에서 자유롭다.

또 2002년에는 노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집단탈당까지 발생하는 등 `후보 흔들기'가 있었던 반면 2012년 문 후보는 후보 확정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대오를 유지해오고 있다.

안 후보가 정당 기반 없이 무소속 신분으로 견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2002년 정 후보는 국민통합21을 창당해 조직 기반을 갖췄다는 점 또한 차이점이다.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run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