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안되면 미래 희망 없다는 생각에 설·추석 빼고 363일 일만…열정을 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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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수 삼성전자 사장, 영남대 특강
“설날, 추석 이틀 빼고는 다 일했다. 반도체가 안 되면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 자신과 가정을 포기했었다. 이런 열정이 있는가.”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사진)은 2000여명의 대학생 청중에게 이같이 되물었다. 1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 캠퍼스에서 열린 삼성 주최 토크콘서트 ‘열정락서’에 강사로 나와서다.
전 사장은 세계 1위, 삼성 메모리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이다. 경북대 전자공학과 77학번인 그는 동기생 대부분이 미국 유학을 떠나던 1983년 석사를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 사업이 계속 적자를 낼 때다.
D램 설계를 맡은 그는 이를 악물었다. “삼성이 있는 돈을 모두 반도체에 투자할 때였다. 개발에 실패하면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실험실에 야전침대를 펴놓고 ‘월화수수금금금’ 일했다. 벽에는 ‘한반도는 반도체다’ ‘하루 일찍 개발하면 13억 번다’는 등의 구호를 붙였고, 머리엔 ‘일본 타도’의 머리띠를 둘렀다. 당시 메모리업계 1~7위가 모두 일본 회사였다. 그런 해가 몇 년 이어졌고 삼성전자는 4M, 64M D램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며 1992년 마침내 세계 1위로 부상했다. 전 사장은 1996년 12월 삼성그룹 사상 최연소 임원이 됐다.
전 사장은 지금을 ‘불확실성, 불연속성, 승자 독식, 초경쟁’의 시대로 정의했다. 이런 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열쇠로 ‘열정’을 꼽았다.
전 사장은 초경쟁을 이겨낼 3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첫 번째가 “집중과 몰입으로 자기만의 컬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내에서 ‘디지털 전도사’로 불린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반도체 개발을 떠나 본사 미래전략그룹장을 맡았다.
두 번째로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유학의 꿈, 가정과 자기 자신마저 포기하고 반도체에 뛰어들어 세계 1위 회사 사장에까지 오른 자신을 사례로 들었다.
전 사장은 마지막으로 “아파야 성숙한다. 아픔을 두려워 말라”고 했다. “30년 회사생활 동안 연구원에서 본사 전략담당으로, 영업맨으로, 경영자로 변신하며 나도 늘 힘들었고, 공부해야 했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했다”며 “고통스런 변화의 과정이었지만 남과 차별화한 경력과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대학생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 뒤로 사라지는 그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경산=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사진)은 2000여명의 대학생 청중에게 이같이 되물었다. 1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 캠퍼스에서 열린 삼성 주최 토크콘서트 ‘열정락서’에 강사로 나와서다.
전 사장은 세계 1위, 삼성 메모리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이다. 경북대 전자공학과 77학번인 그는 동기생 대부분이 미국 유학을 떠나던 1983년 석사를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반도체 사업이 계속 적자를 낼 때다.
D램 설계를 맡은 그는 이를 악물었다. “삼성이 있는 돈을 모두 반도체에 투자할 때였다. 개발에 실패하면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실험실에 야전침대를 펴놓고 ‘월화수수금금금’ 일했다. 벽에는 ‘한반도는 반도체다’ ‘하루 일찍 개발하면 13억 번다’는 등의 구호를 붙였고, 머리엔 ‘일본 타도’의 머리띠를 둘렀다. 당시 메모리업계 1~7위가 모두 일본 회사였다. 그런 해가 몇 년 이어졌고 삼성전자는 4M, 64M D램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며 1992년 마침내 세계 1위로 부상했다. 전 사장은 1996년 12월 삼성그룹 사상 최연소 임원이 됐다.
전 사장은 지금을 ‘불확실성, 불연속성, 승자 독식, 초경쟁’의 시대로 정의했다. 이런 시대를 헤쳐갈 수 있는 열쇠로 ‘열정’을 꼽았다.
전 사장은 초경쟁을 이겨낼 3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첫 번째가 “집중과 몰입으로 자기만의 컬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내에서 ‘디지털 전도사’로 불린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반도체 개발을 떠나 본사 미래전략그룹장을 맡았다.
두 번째로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유학의 꿈, 가정과 자기 자신마저 포기하고 반도체에 뛰어들어 세계 1위 회사 사장에까지 오른 자신을 사례로 들었다.
전 사장은 마지막으로 “아파야 성숙한다. 아픔을 두려워 말라”고 했다. “30년 회사생활 동안 연구원에서 본사 전략담당으로, 영업맨으로, 경영자로 변신하며 나도 늘 힘들었고, 공부해야 했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했다”며 “고통스런 변화의 과정이었지만 남과 차별화한 경력과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대학생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 뒤로 사라지는 그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경산=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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