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1천74원, 대기업 1천69원 이하면 '손해 장사'
기업 52.6%, 환율 급락 피해 현실화…내수는 '반사이익' 기대

산업팀 =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천100원대 붕괴 이후에도 연일 하락을 거듭하면서 수출기업들에 '비상등'이 켜졌다.

수출기업들은 그동안 환율 하락에 대비,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한 만큼 단기 환율 변동에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원화 강세가 장기화하면 '수출경쟁력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한다.

중소기업은 수출 손익분기점 환율을 1천74원대, 대기업은 1천69원대로 본다.

반면 항공, 여행, 식품 등의 내수 업종은 환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수출기업들 장기 대책 마련 분주 = 우리나라 주력 수출 업종인 전자와 완성차업계는 환율변동에 특히 민감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내수경기 침체로 수출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율마저 하락하면서 업계의 주름살도 깊어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수출 비중이 75~8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이 약 2천억원(현대차 1천200억원, 기아차 800억원) 줄어든다.

현대차 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올해 연평균 환율을 1천130원대로 예상하고 내년에는 1천110원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은 환율이 그보다 더 하락할 것으로 보고 시장 전망보다 보수적으로 잡은 환율 예상을 바탕으로 내년 경영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현대차 재경본부장 이원희 부사장은 "시장에서 예상하는 내년 환율은 1천76원이지만, 그보다 더 보수적으로 경영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근본적인 원가구조 개선과 함께 '환리스크' 관리 방안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현재보다 환율이 다소 떨어져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자업계도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로 원자재나 장비 수입 대금을 결제하는 '내추럴헤지(natural hedge)' 방식이 보편화해 있어 단기적인 환율 변동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단기 대응보다는 환율 하락의 장기화에 대비한 글로벌 환관리 시스템으로 환율변동위험을 주기적으로 관찰한다.

LG전자와 SK하이닉스도 환율의 장기 변동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건설업계도 대다수 기업이 환율변동 보험에 가입하는 등 '환헤지' 조처를 하고 있어 당장 큰 손해는 없겠지만, 환율이 1천원대 이하로 확 떨어지면 수익성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수출기업 손익분기점 환율 마지노선은 =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출기업 160개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52.6%가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으로는 '기존 수출계약 물량에 대한 환차손 발생'(49.6%)이 가장 많았고 '원화 환산 수출액 감소에 따른 채산성 악화'(31%), '수출단가 상승에 의한 가격경쟁력 약화'(17.7%) 등의 순이었다.

지난 3월 대한무역협회가 18개 품목별 수출기업 988개사를 조사한 바로는 올해 사업계획 환율로 대기업은 평균 1천98원, 중소기업은 평균 1천106원으로 책정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환율이 1천100원 이하로 떨어진 현재 대기업은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조사에서 손익분기점 환율로 중소기업은 1천74원을, 대기업은 1천69원을 제시했다.

환율이 이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수출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

전체 응답 기업의 80% 이상은 환율이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지면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가 10% 오르면 우리나라 공산품의 수출 가격은 평균 2.1%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지난달 수출에 대입하면 대표 수출 품목인 휴대전화는 4.4%, 반도체는 0.7%, 자동차는 0.1%씩 채산성이 떨어진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환율이 1천100원 밑으로 떨어진 지난 25일 이후 중소수출기업으로부터 환율 하락에 따른 애로사항이 접수된 것은 아직 없다"면서도 "환율 하락이 장기화하면 무역업계의 의견을 모아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환율 하락으로 '반사이익' 얻는 업종도 = 환율 하락으로 대부분 수출기업이 채산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지만 이익 상승으로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업종도 있다.

항공, 여행, 식품 등이 대표적이다.

항공업종은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으로 큰 수혜를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환율이 떨어지면 외화부채가 축소되고 항공유 등 달러로 결제하는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736억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도 10원 하락에 87억원의 이익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들이 올해 경영계획을 세울 때 연간 평균 환율을 1천70~1080원 수준으로 잡았다"며 "연간 환율이 목표치보다 크게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하락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이익은 당초 예상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행업계도 환율 하락을 반기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국외여행 부담이 줄어 수요 증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지 호텔이나 여행상품을 미리 예약하는 데에서 나오는 환차익까지 고려하면 여행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더욱 커진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의 정기윤 팀장은 "업계 분석을 보면 환율이 떨어지면 여행객은 늘어난다"며 "실제로 여행수요를 예측할 때 환율은 중요 고려사항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다만 2008년 환율 급등 당시 여행업계에서 환율 급변에 따라 손익이 커지지 않도록 사전계약제를 비롯해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 이번 환율 하락으로 경영환경이 크게 좋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밀가루와 설탕 등 수입 원재료를 사용하는 식품업계와 면세점 업계 등도 환율 하락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서울=연합뉴스)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