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24일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2’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시기 적절한 조치가 지연된다면) 유로존이 앞으로 10년 정도 ‘일본식 불황’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세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국제 공조 방안’을 주제로 연설한 뒤 가진 공식대담과 인터뷰를 통해 “유로존이 10년간 장기불황(스태그네이션)에 빠질 수 있다”며 “유럽의 상황이 1980년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일본 상황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 유럽 아시아 남미 등의 주요 국가들이 참여해 글로벌 성장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로존, 단계적으로 재정통합해야”

브라운 전 총리는 “(글로벌 위기상황에선) 개별 국가의 성장전략에는 한계가 있다”며 “소비 중심지인 미국·유럽은 생산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생산 중심지인 중국 등 아시아는 소비를 늘리기로 하는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합의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보호주의와 통화전쟁을 지목했다. 브라운 전 총리는 “국가들은 통화전쟁을 넘어서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 자국의 화폐가치를 절하하는 일을 그만둬야 하며, 보호주의를 제한하는 새로운 합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전 세계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금융 규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브라운 전 총리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1년간 영국의 재무장관을 맡는 등 금융 및 재정정책 전문가다.

그는 유럽의 주요 정치인으로서 현재 유로존이 위기에 처한 데 책임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영국에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라고 답변을 피했다. ‘영국이 유로존에 들지 않도록 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느냐’는 질문에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출범 당시 재정통합 없는 유로존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에선 유로존에 가입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19개의 보고서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브라운 전 총리는 “유럽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10년 이상 필요하다”면서도 “유로존 국가들은 재정통합의 방향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통합은 점진적이고 순차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예컨대 2013년에는 은행에 대한 공동 규제가, 2014년에는 각국 재무부 간 협조체계가 생기는 식으로 단계적인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 은행에 공적기금 투입해야”

전통적으로 분배를 강조하는 노동당의 당수였던 브라운 전 총리가 이날 연설과 대담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한 단어는 ‘성장(growth)’이었다. 그는 “현재 유럽의 실업률은 11%에 이르고, 젊은층의 실업률은 20%에 육박한다”며 “세계적인 성장 전략의 한 부분으로서 유럽에 맞는 성장전략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 기업의 수출 증대, 안정적인 은행 시스템 등 세 가지가 갖춰져야 성장 전략이 작동할 수 있다”며 “유럽 은행들에 공적기금을 투입해 부채 비율을 낮추고 예금보험제도를 확대해 경제안정의 토대를 마련한 뒤 기업과 인프라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라운 전 총리는 “스페인 경제는 계속 나빠지고 재정적자는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내 저성장 국가들이 외부 도움을 얻기 위해 긴축정책을 실시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 국가에 경기 부양책도 함께 제공해야 유로존의 동반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상은/심성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