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SK이노베이션의 울산공장 제8부두에선 가을 하늘빛 바다와 대비되는 적색의 거대한 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반면 바로 옆 7부두에 정박한 하얀색 배는 수면 위로 떠올라 서서히 선체를 드러냈다. 30만 배럴 규모의 원유선인 흰 배는 가져온 물량을 내리는 중이었고 66만 배럴 규모의 적색 배는 인도네시아로 가져갈 디젤을 싣고 있었다. 원유는 수입하지만 석유제품은 수출한다. 국내 수출액 1위인 석유제품 수출 현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동에서 사온 원유를 재가공해 세계 100여국에 팔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공장은 정적이었다. 파이프라인만 복잡하게 얽혀있을 뿐 자동화 시설을 갖춰, 4조3교대로 일한다는 3000명의 직원들 얼굴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거대한 송유관 곁에 서자 수십종의 석유제품들의 흐름이 느껴졌다. 원유 하역과 정제, 석유제품 출하 등 전체 공정은 송유관을 통해 이뤄진다. 공장 내 송유관 길이만 60만㎞로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1.5배다.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장생포의 작은 어촌 마을이 지난 50년 간 한국 석유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1962년 국내 최초의 정유사인 대한석유공사가 설립되고 1964년 3만5000배럴 규모의 제1상압증류시설이 가동된 이후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기준 2억9700만배럴의 생산능력을 갖춘 에너지회사로 성장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부지는 서울 여의도의 2.5배에 크기인 826만㎡(250만평)다. 원유선과 제품선 등 22척의 선박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8개 부두엔 매년 1200여 척의 선박이 드나들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 하루 석유소비량(200만배럴)의 15%에 해당하는 30만 배럴이 매일 수출된다. 최영식 해상총괄2팀 총반장은 “8부두는 바다 깊이가 최고 18.5m로 16만5000t 규모의 수출선이 들어올 수 있는 큰 부두”라며 “석유제품 100만배럴을 선적하는 배도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제품선에 석유제품을 선적하는 장비 로딩암(loading arm) 동시 주입 기술도 SK이노베이션의 강점이다. 해운사를 통해 수출선을 계약하는 만큼 선적 시간을 줄여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대 100만 배럴 규모의 제품선에 선적할 때는 로딩암 3개를 동시에 연결해 주입한다. 최 총반장은 “여러대 모터를 이용해 파이프라인 내 압력을 균일하게 유지해야해 기술적인 정교함과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이라며 “복수의 로딩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기술력을 확보해 급증하는 수출물량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의 수출은 1964년 3만 배럴에서 지난해 1억7200만배럴로 증가했다. 1980년 SK그룹이 유공을 인수한 이후 수출 규모는 800배 가량 늘었다. 1976년 처음 수출액 1조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엔 68조3700억원의 전체 매출 중 47조5600억원으로 70% 가까이를 수출로 벌었다.

울산=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