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현상이요?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봐요. 세계 문화시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시장으로 통합됐는데 한국시장만 별도의 섬처럼 존재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영화건 가요건 공연이건 한국 것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자기 콘텐츠에 대한 강한 ‘집착’이 싸이 같은 국제적 스타를 만들어 낸 게 아닐까요.”

1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안호상 국립극장장(53·사진)은 싸이 신드롬이 한국인의 민족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1년에 140편씩 만들 정도로 전 세계에서 창작 뮤지컬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며 “우리 것을 만드는 걸 부추기는 한국의 토양과 환경이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완성된 시장구조를 형성했고 싸이 같은 스타를 탄생시켰다”고 덧붙였다.

올초 국립극장장에 취임한 그는 취임 전 23년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기획자로 일하며 ‘공연기획계의 미다스의 손’이라 불렸다. 1984년 예술의전당 1기 행정요원으로 입사, 1990년대 후반에 국내 처음으로 말러 교향곡 시리즈를 선보였고, 대중가수로는 처음 조용필 씨를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세웠다. 또 토월 정통 연극시리즈, 오페라 페스티벌 등을 기획하며 예술의 전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국 공연 역사의 산증인인 그가 국립극장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9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 공연계에서는 국립극장이 ‘변했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립극장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 국립극장은 국내 유일의 ‘국립’ 극장이지만 대표 공연 하나 없을 정도로 이름값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표적인 변화가 ‘레퍼토리 시즌제’의 도입이다. “레퍼토리 공연은 박물관의 유물과 같은 개념이에요. 러시아 국민들이 볼쇼이극장에 가서 ‘백조의 호수’나 ‘지젤’ 공연을 보고 싶어하고, 영국 사람들이 영국국립극장에 가서 ‘오셀로’ 공연을 보고 싶어하듯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립극장에 와서 꼭 보고 싶어하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껏 그런 게 없었어요. 대표 레퍼토리가 없었던 거죠. 예산으로 6억원을 받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안 극장장은 관객의 편의를 위해 식당 리모델링도 진행 중이다. 그는 “극장은 공연만 보는 곳이 아니라 자기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러 가는 것”이라며 “관객들이 사람을 만나 대화도 하고 음식도 먹고 그런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까지 중저가 식당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립극장의 관객 절반은 외국인 관객으로 채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프라하 국립극장, 뉴욕 링컨센터, 일본 가부키극장 같은 경우 관객의 40~50%는 외국인 관광객입니다. 베이징에 가면 경극을 보고, 도쿄에 가면 가부키 공연을 보듯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의 창극, 판소리 공연을 보러 국립극장을 찾도록 마케팅을 펼칠 예정입니다.”

김인선 /사진=허문찬 기자 inddo@hankyung.com

■ 레퍼토리 시즌제

공연장에서 일정 기간 모든 작품의 스케줄을 미리 정해 알려주는 제도. 관객은 공연 티켓을 쉽게 살 수 있고, 극장은 경쟁력 있는 작품 제작에 집중해 공연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국립극장은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국립창극단 등 8개 국립 예술단체의 공연을 시즌 동안 무대에 순차적으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