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 침체와 수출 부진으로 대기업의 현금 흐름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우에 따라 ‘제2 웅진 사태’가 생겨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업종별로는 조선 기계 철강 화학 유통 제약 서비스 등의 동반 부실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16일 한국은행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4.6배를 기록한 대기업(상장사 기준)의 이자보상배율은 지난해 3.9배로 하락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3.4배로 떨어졌다. 이는 2005년(3.8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대기업의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1배 이하를 기록한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2010년 1.1배에서 지난해 1.6배로 높아졌다. 올 상반기 들어 1.3배로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2009년 이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의 부채상환 능력이 단기간에 나빠진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웅진에 이어 추가로 부실화하는 기업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사상 유례없는 저금리에도 수익성 악화가 이어질 경우 아직 드러나지 않은 대기업들의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영헌 한국은행 기업통계팀장은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업부채 문제까지 불거질 경우 금융시장은 물론 투자 고용 등 거시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인 기업 비중은 26.4%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의 21.6%보다 크게 높아진 것으로 상장기업 4개 중 1개가 부실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이자보상배율 1배 이하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업종별로는 조선 기계 철강 화학 유통 제약업 등에서 1배 이하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섬유의복의 경우 1배 이하 기업 비중이 지난해 12.5%에서 올 상반기 50.0%로 뛰어올랐다. 해당 업종의 기업 절반이 이자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조선은 16.7%에서 33.3%로, 철강은 11.9%에서 33.3%로, 제약업은 16.7%에서 36.1%로, 유통은 19.2%에서 26.9%로 각각 상승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제조업을 떠받쳤던 전기·전자업종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업종의 이자보상배율은 지난해 2.0배에서 올 상반기 1.2배로 하락한 반면 이자보상배율 1배 이하 기업 비중은 32.2%에서 40.7%로 올랐다. 수익성 악화가 계속된다면 전기·전자업종의 40%가 무더기로 부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중견 부품 기업들을 중심으로 자금사정이 나빠지고있어 추가 충격이 올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 이자보상배율

기업이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영업이익을 지급이자 비용으로 나눠 산출한다. 이자보상배율이 1 보다 작으면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보다 갚아야 할 이자비용이 더 많다는 뜻이다. 이자 지급 능력에 문제가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