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누드 모델을 찍은 사진에 얇은 비닐을 덮고, 그 위에 화려한 색깔의 옷을 그려 넣는 독특한 방식의 작업은 배준성 씨(49)의 전매 특허다. 옷이 정교하게 그려진 투명비닐을 들추면 누드사진이 드러난다. ‘들춰보는 재미가 있는 그림’으로 유명한 배씨의 개인전이 17일부터 내달 7일까지 서울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열린다.

배씨는 서양 미술사의 명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입었던 의상을 한국인 모델에게 입혀 사진과 회화, 과거과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결합을 시도해왔다. 2007년에는 빛의 굴절을 달리해 복수의 이미지가 합체된 렌티큘러 그림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움직이는 정물’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그리기에 더욱 충실한 신작 ‘화가의 옷’ 시리즈 20여점과 영상 작업을 내보인다. 루브르, 발자크, 오르세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의 전시 작품뿐 아니라 관람객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은 ‘숨은 그림찾기’처럼 서양 명화와 낯익은 풍경들이 교차한다. 뿌옇게 서린 수증기를 훔쳐낸 부분에는 그리스 유적이나 명화가 보이고, 책장에 꽂힌 책 사이에서 북유럽 정물화에 등장하는 화병과 각종 정물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또 정원의 돌계단, 야유회가 열리는 풀밭, 야외 수영장에 서 있는 전라의 남녀 모습은 관음증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배씨는 “특정 대상을 취향에 따라 굴절, 왜곡시키고 재조합한다. 어떤 대상이건 의심하며 비껴 보고 흔들어보는 게 체질화됐다”며 “회화의 이중적이고 다층적인 면을 한 화면에 소화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