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마음껏 상상하고, 발명하고, 꿈꿀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남겨둡니다. 평범한 것도 화가의 눈을 통하면 특이하게 보일 때가 많은데 그런 것에서 영감을 받은 제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한국경제신문 창간 48주년을 기념해 1층 한경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12~28일)을 열기 위해 11일 방한한 프랑스의 유명 화가 쟝 마리 자키(68·사진)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파리 현대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향 코르시카 섬과 지중해 연안, 파리 등을 무대로 청·백·녹색 위주의 백송과 자작나무, 꽃, 풍경을 반추상화로 선보여온 화가. 19세 때 파리 그랑팔레에서 개최되는 ‘프랑스 화가전’에 참가하며 미술계에 입문한 그는 독일 한스 토마미술관과 중국 톈진미술관, 일본 도쿄 중앙박물관, 미국 LA 다운타운미술관, 스위스 로잔 현대미술국제살롱전 등에 잇달아 참가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프랑스 대형 화랑인 뒤마레 갤러리와 일본 도쿄 사쿠라 누키갤러리 전속작가인 그는 200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2010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기념 전시회에 프랑스 대표 작가로 참여했다.

‘백송의 화가’로 불리는 그는 “나무와 꽃은 자연이자 우리를 숨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교감을 담아내는 데 매력적인 소재”라고 말했다. 그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대상의 내면을 포착,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운차게 하늘로 치솟은 백송과 자작나무, 둥치를 휘돌아가며 힘차게 뻗는 줄기와 잎사귀들, 코발트빛 바다 등 어디에도 인위적인 요소를 보태지 않는다.

자연의 이미지를 흉내낸다는 일부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0여년간 코르시카와 파리, 지중해 연안 도시의 풍경에 천착한 이유는 뭘까.

“초창기엔 코르시카의 백송과 꽃을 소재로 작업을 했어요. 계속 그리다 보니 나중엔 더 그릴 게 없어서 베네치아로 갔는데 비잔틴 양식의 다리와 건물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운하에 햇살이 촛불처럼 비치더군요. 지중해의 코발트빛도 참 아름다웠죠. 이렇듯 새로운 자연에 대한 호기심은 제 작업과 창의의 원동력입니다.”

그의 작품은 힘있고 정교하다. 작업 과정도 쉽지 않다. 물감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그는 가장 어두운 색부터 시작해서 그보다 한 톤 밝은 색상으로 바꿔가며 형상을 묘사하고 그 위에 또 한 톤 밝은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작품마다 수천번을 붓질한 후 나이프로 입체감을 살려낸다.

“처음에는 나무와 꽃을 추상적으로 그렸는데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지질 않았어요. 그래서 빛과 색채의 조화를 강조하기 위해 나이프를 사용한 겁니다.”

인상파 화가 피에르 보나르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파리 근교 작업실에서 하루 16~20시간 작업하다 보면 지겨울 때도 있지만 나이프 작업으로 새로운 것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지중해의 찬란한 빛’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백송과 자작나무, 꽃을 반추상 형태로 묘사한 작품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12일 오후 5시에는 회현동 프랑스문화원에서 ‘자키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린다. (02)360-4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