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모바일도 위기 가능성…임원들 새벽출근에 절주 캠페인
삼성은 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스마트폰 TV 메모리칩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글로벌 1위 제품은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최근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브랜드 가치에선 사상 최초로 ‘톱 10’에 진입했다.
삼성이 강하다고 느껴지는 건 그럼에도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삼성이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리는 데는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애플이 주도한 ‘스마트 혁명’ 속에 흔들리던 삼성은 2010년 3월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질서를 되찾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테크윈에서 불거진 비리를 계기로 부정부패를 일소하더니, 올 6월엔 미래전략실장을 전격 교체해 그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안주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삼성이 잘나가는 이유로 요약된다.
○이건희 “정신 안 차리면 금방 뒤진다”
정보기술(IT) 업계의 지각 변동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몇 년 전까지 휴대폰 시장을 독주하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가 오자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태블릿PC가 시장을 휩쓸자 휴렛팩커드(HP)와 델도 흔들린다. 앵그리버드 등 모바일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닌텐도의 아성은 무너졌다. 이 회장이 지난 1월 미국 가전쇼 CES를 보고 “정말 앞으로 몇 년, 십 년 사이에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지겠다 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긴장이 된다”고 밝힌 이유다.
실제 최근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등의 시장이 유럽발 위기로 위축되고 있는 데다 효자인 모바일 사업도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갤럭시S, 갤럭시노트 등 100만원대(900달러 이상)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시장이 심상치 않다. 삼성 관계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대한 신규, 교체 수요가 내년 상반기쯤 한풀 꺾일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최근 ‘50달러 스마트폰의 부상’이란 보고서에서 “향후 프리미엄급보다 50달러 수준의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며 중국 업체들이 주목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모바일은 삼성전자 내 반도체,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삼성전기(카메라모듈, MLCC, 기판 등), 삼성SDI(배터리), 제일모직(스마트폰 케이스) 등 전자계열사들의 돈줄 역할을 해왔다. 모바일 사업이 부진해지면 그룹 전체에 동반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6년 연속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TV 사업도 시장의 역성장으로 불안하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TV 시장은 전년 동기보다 8% 줄었다. 삼성전자는 대형 TV를 앞세워 점유율을 늘렸지만 시장이 줄어들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부품 부문은 더 어렵다. 디스플레이 사업이 몇 년째 적자를 내다 지난 4월 분사됐고, 반도체 사업도 골이 깊어지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가 10월초` 발표한 DDR3 2Gb(256M×8 1333/1600㎒) D램의 9월 하반기 고정거래가는 0.86달러로 지난해 12월의 역대 최저 기록(0.88달러)을 갈아치웠다.
여기에 글로벌 부품업계는 어느새 애플의 포로가 됐다. 여러 완성품 업체가 공존하던 IT 업계가 애플의 등장으로 초토화되고 ‘슈퍼갑’ 애플만 남았다. 이런 애플이 삼성 부품을 배제하려 하는 것도 부담이다. 최근 애플은 아이폰5에서 삼성의 메모리칩을 뺐다. 이달 17일께 발표할 아이패드 미니에선 아이패드 시리즈 중 처음으로 삼성 디스플레이를 쓰지 않는다.
삼성은 최근 전 계열사 임원을 새벽 6시반에 출근하도록 하고 1차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절주캠페인을 시작했다. 위기감의 발로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지난 추석 연휴 때도 1일부터 정상근무했다.
○5대 신수종 사업에 미래를 건다
“삼성의 미래는 신사업, 신제품, 신기술에 달려 있다. 기존의 틀을 모두 깨고 오직 새로운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실패는 삼성인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기를 당부한다.”
이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삼성은 2010년 △태양전지 △전기자동차용 전지 △LED(발광다이오드)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5대 신수종사업으로 정하고 2020년까지 23조원을 순차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삼성SDI가 맡고 있다. BMW가 내년부터 본격적인 전기차 양산 체제에 돌입하면 삼성SDI의 배터리 생산량도 껑충 뛰게 된다. 태양전지는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전락한 결정계 제품을 포기하고 차세대 제품인 박막계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LED도 내년 이후 규모의 경제를 갖춰 경쟁자들을 제압해간다는 계획이다.
바이오·제약은 미국 퀸타일즈와 합작해 만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인천 송도에 바이오시밀러 생산단지를 건립하고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내년 중 시험생산에 들어간다.
삼성전자는 2010년 말 의료기기업체인 메디슨을 인수했다. 연말께 삼성메디슨을 합병한 뒤 2014년 MRI CT 등 고가의 대형 의료장비를 개발해 판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