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은 위기에 힘을 합치고 있는데, 우리는 ‘내가 더 어렵다’는 소리 뿐이네요.” 한 철강업계 관계자의 한숨섞인 푸념이다. 경쟁국에서는 철강·조선·해운업계가 물량 몰아주기와 합종연횡으로 ‘상생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판에 국내 기업들은 자기 주장만 펴는 데 바쁘다는 얘기다.

중국·일본 철강제품에 대한 반(反)덤핑 제소가 대표적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난 8월 일본 현지조사를 마쳤고, 중국에 대해서도 기초 조사가 다 돼 있어 확인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며 “값싼 수입재가 들어오는 게 유리한 조선업계와 이해가 충돌하면서 논의가 원론적 수준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당초 추석을 전후해 반덤핑 제소에 대한 기초적인 밑그림이 나올 것으로 예상해 왔다.

철강·조선업계는 선박 건조에 사용하는 후판가격을 놓고도 1년 내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조선사들은 “철광석의 국제 시세가 하락한 만큼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철강사들은 “가격 결정구조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해운과 철강업계 간 협력도 아쉽다. 선·화주 간 상생의 협력기반이 확고한 일본은 제철, 철강, 전력회사 등과 해운업체가 전략적 제휴를 통해 불황을 경쟁력 확보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형 화주의 해운업 진출 문제를 놓고 해운업계가 포스코에 날을 세우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주요 수출국은 무서운 기세로 공세를 퍼붓고 있다. 유스코 등 대만 스테인리스 업체는 지난 8월 한국 등 4개국 스테인리스 냉연에 반덤핑 제소를 했고, 캐나다는 한국 등 7개국에서 생산된 탄소강관의 덤핑 여부를 조사 중이다. 올 들어서만 10여개 국가에서 한국 철강제품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1위의 조선강국이자, 최대 규모의 제철소를 갖고 있다. 세계 7위의 선단을 갖춘 해운국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해운과 조선, 철강산업은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서로 영향을 미쳐왔다. 세 산업이 동시에 상위권에 속하는 몇 안 되는 국가에 꼽힌다. 그런데 산업 간 의존도에 비해 협력도는 터무니 없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보와 협력을 통해 위기극복 방안을 마련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유정 산업부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