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모피아는 안돼"…'경제수석 김석동' 퇴짜놓고 김중수 낙점
‘김중수냐, 김정수냐, 김경수냐?’

2008년 2월 초,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차려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주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 후보로 이들 세 명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모두 성이 ‘김(金)’씨이고, 이름 마지막 글자가 ‘수’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낸 김중수 한림대 총장,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김경수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이었다.

MB "모피아는 안돼"…'경제수석 김석동' 퇴짜놓고 김중수 낙점
2월4일 일부 일간지는 김학렬 전 경제부총리의 아들로 미국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박사인 김정수 소장이 경제수석에 내정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다른 신문은 김정수가 아니라 김중수 총장을 검토 중이라고 썼다. 인수위 출입 기자들은 경제수석 내정자의 이름 ‘가운데 자(字)’를 취재하느라 진땀을 뺐다. 국정기획수석(곽승준), 외교안보수석(김병국), 민정수석(이종찬), 교육문화수석(이주호) 등은 일찌감치 정해진 데 반해 경제수석은 막판까지 오리무중이었다.

설 연휴(2월6~10일) 마지막 날인 10일 오전 청와대 참모진 인사에서 경제수석을 차지한 사람은 김중수 총장이었다. 철저한 시장주의자로 개방과 경쟁, 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MB노믹스’ 철학을 실천할 적임자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책연구기관인 KDI 원장을 지낸 데다 이명박 후보 캠프나 인수위 등에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 총장의 청와대 경제수석 발탁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정책팀 핵심 진용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삼각 편대’로 짜였다. 정통 재무관료 출신 재정부 장관에 40대 교수 출신 국정기획수석, KDI 이코노미스트 출신 경제수석의 조합은 출신과 정권의 지분 등에서 조화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마치 김대중 정부의 첫 경제팀 진용을 연상케 했다.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재무부 출신 이규성, 경제수석은 진보학자 출신 김태동, 정책기획수석은 경제기획원 출신 강봉균이었다. 이들 세 사람은 서로 주도권 다툼을 벌이며 손발을 전혀 맞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환율·금리와 산업은행 민영화 같은 주요 정책에서 불협화음이 터져나온 것은 경제팀 멤버들의 ‘불편한 동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MB, ‘모피아’ 불신

MB 정부 경제정책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첫 경제수석에 김 총장이 낙점받은 배경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이 대통령의 ‘모피아(재무관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숨어 있었다. 강만수의 증언. “당시 인사는 인수위에서 정두언 의원과 박영준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이 실무적으로 정리하고, 당선인이 직접 고심해 결정했다. 난 김중수 경제수석도 발표되는 날에야 알았다. 나는 경제수석에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차관을 추천했다. 외화자금과장으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경험한 데다 사태 해결 능력이 뛰어나 적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인은 묵묵부답이었다. 아무 말씀이 없다는 건 부정적이란 뜻이다.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의 재무관료에 대한 불신은 역사가 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 시절 높은 은행 문턱을 드나들면서 겪은 ‘을(乙)의 설움’에서 관치금융에 대한 반감이 싹튼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장 시절에도 국제 금융포럼을 열면서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몇 차례 부딪쳐 모피아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인사에 관여했던 인수위 핵심 관계자의 회고. “당선인은 초대 재정부 장관으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시절부터 정책 자문을 해온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을 일찌감치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경제정책 포스트에는 재무관료 출신을 절대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금융위원장, 백용호에서 전광우로

‘모피아 배제’ 원칙이 적용된 자리 중 하나가 금융위원장이었다. 정부 조직 개편으로 재경부 금융정책국이 떨어져 나오면서 사실상 ‘금융부’ 역할을 하게 된 금융위원회 수장은 상식적으로 재무관료 출신이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인수위 관계자의 증언.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지휘하는 금융위의 첫 위원장은 무조건 민간 출신으로 한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엔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를 유력하게 검토했다. 대선 때 바른정책연구원이란 싱크탱크를 이끌며 MB노믹스 수립에 기여한 데다 금융을 전공한 백 교수 자신도 금융위원장을 강하게 희망했다. 하지만 막판에 백 교수에서 전광우 포스코 이사회 의장으로 바뀌었다. 어쨌든 민간인 발탁이란 원칙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초대 금융위원장이 백 교수에서 전 의장으로 바뀐 데는 사연이 있다. 인수위 관계자의 회고. “당선인도 처음엔 백 교수를 맘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2월 초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을 면담하면서 전 의장이 급부상했다. 사공 전 장관은 당선인에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만만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수도 있으니 금융위원장은 글로벌 감각이 있는 사람이 좋겠다’며 세계은행(WB) 근무 경력이 있는 전 의장을 추천했다. 이 말에 당선인도 공감하면서 인선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사공 전 장관과 전 의장은 국제통화기금(IMF)과 WB 등 국제금융기구에 근무했던 한국인들의 모임인 ‘브레턴우즈클럽’ 멤버로 서로 가까웠다.”

특별취재팀=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

■ 모피아(Mofia)

재무 관료들을 이탈리아의 범죄조직인 마피아에 빗댄 말. 과거 재무부(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재무 관료들이 마피아처럼 세력을 구축해 경제권력을 장악하고, 금융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현상에서 유래했다. 옛 경제부처의 쌍두마차중 하나였던 경제기획원(EPB)과 달리 재무부 출신들은 선후배 간 끈끈한 유대를 바탕으로 경제계 곳곳에서 세력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대한 반감 때문에 역대 정권마다 초기 인사에서 ‘모피아’를 배제했다. 대신 대학교수나 민간인들을 많이 발탁했다. 그러나 실물경제와 금융에 밝고 현안을 해결하는 능력 때문에 정권 중반 이후엔 재무관료를 기용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1기 경제팀에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만 재무관료였다. 하지만 2기 경제팀에선 재정부 장관(윤증현), 금융위원장(진동수), 경제수석(윤진식) 등을 모두 재무부 출신이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