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사토 겐이치 "정치인보다 시민단체 나설 때 영토분쟁 해법 보이죠"
하늘은 높고 청청했다. 한낮의 햇볕은 제법 따가웠지만 살갗에 닿기 바쁘게 바람이 거두어 갔다. 가을이 제 모습을 갖춰가던 지난 18일 경기도 파주출판산업단지에서 책축제 ‘파주북소리 2012’에 참석한 일본 역사소설가 사토 겐이치(44)를 만났다. 사토 겐이치는 구상에만 20년이 걸렸다는 역사소설 《프랑스혁명》(한길사·사진)의 저자. 전 12권 중 5, 6권이 최근 국내 출간됐다.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프랑스혁명이 오늘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왜 지금 18세기 프랑스혁명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요.

“역사소설가로서 꼭 한 번 다루고 싶었던 주제였습니다.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서구 근대사는 어느 한 지역의 역사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현대 국가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많은 국가들이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 길을 묻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은 223년 전 프랑스혁명이 제시한 가치였는데, 아직 길을 찾지 못한 것이죠. 다시 한번 이 근대의 출발점을 살펴보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혁명의 이상은 자유, 평등, 박애였죠.

“당시에도 자유와 평등 두 가치는 양립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 평등뿐 아니라 사회적 평등도 실현해야 한다’는 논리로 경제적 자유를 억제하고 정부가 부를 재분배하려던 게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입니다. 그러자 부자들이 반발했지요. 결국 로베스피에르 일당은 쿠데타로 인해 실각합니다. 그 후 결국 왕정으로 돌아가죠. 쿠데타의 근본 원인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복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재정 파탄을 초래합니다. 프랑스혁명과 똑같은 고민을 현재에도 계속하고 있는 것이죠.”

▷프랑스혁명의 이상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이상으로 내걸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도 그 가치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그 방증입니다.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면 발굴해야겠죠.”

▷한국에서도 경제적 자유냐 평등이냐를 놓고 논쟁이 뜨겁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재분배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네요. 일본은 예전보다 재벌이 많이 없어졌고 그만큼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쪽도 약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은 절대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떤 걸 선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당연한 얘기이지만 굳이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 문화와 가치관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인들에게도 프랑스혁명 당시처럼 이상을 향한 열정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죠. 지금 세상은 너무나 풍요롭습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을 버려가면서까지 혁명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려 들겠는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인 일본인 모두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정도의 에너지와 정열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정체되고 있는 것이죠. 아마 이게 계속되면 다시 어둠의 시대가 올 겁니다. 그러면 또 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열정이 생겨나겠죠. 어찌보면 그런 성공과 실패의 반복이 인류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반복이 인류의 역사라는 그의 말에서 과거사를 둘러싸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한·중·일 사이의 갈등이 묘하게 떠올랐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로 한·일 간 그리고 중·일 간 영토 분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독도·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첨예합니다.

“과거사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역사를 현재에서 분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현재의 과거사 문제는 역사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변질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정치가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일본이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치가들에게 모든 걸 맡길 게 아니라 민간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한·일 양국 국민 차원에서 하나의 역사에 합의하고 정치인들에게 이를 촉구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민간교류를 위해서라도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인 모두가 과거의 제국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애써 부인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를 국가적인 성명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요. 조만간 일본도 성숙한 역사관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중·일 3국과 대만까지 시민들이 힘을 합쳐서 제대로 된 역사를 확립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 자료를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문제이고 어떤 것이 맞는지 판별할 만한 수준에 있습니다. 정치가가 아니라 신문사나 대학, 시민단체가 나서서 하나의 공통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과거사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 유럽연합처럼 동아시아 공동체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중 영토 분쟁도 일촉즉발 상황입니다.

“일본은 조용히 지내온 나라가 아닙니다. 20세기 전반 내내 전쟁을 한 국가죠. 전시에는 이 나라의 영토였던 곳이 다른 나라에 속하게 되는 일이 쉽게 일어납니다. 지금의 영토 분쟁이 불가피한 이유지요. 문제는 일본이 제대로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이 심화됐다는 점입니다.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문제임에도 해결을 회피해 온 일본 정치가들의 책임이 큽니다.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말했는데 아시아는 유럽보다 ‘하나의 아시아인’이란 인식이 부족한 듯합니다.

“아시아에는 유럽과 달리 ‘하나의 아시아인’이라는 인식이 없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교류를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와중에도 교류는 필요합니다. 한 일본인이 있다고 치면, 이 사람에게 한국인 친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큽니다. 문제가 있을 때 내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볼 수 있고 서로 소통하면서 공동체 의식이 생깁니다. 친구가 없다면 자기 입장만 생각하게 되겠죠. 교류가 늘어날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겁니다. 한·중·일이 하나라는 의식은 유럽보다 부족하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면 오히려 더 단단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동아시아는 유구한 문명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공통의 역사도 많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해서 튼튼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뭐든지 다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문제에 봉착할 수도, 의견이 틀어질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안으로 곪는 것보다 터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뭐든지 툭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소설 프랑스혁명》을 읽어주신다면, 등장인물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이렇게 바꿔나가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사토 겐이치는 서양사·프랑스문학 전공…'왕비의 이혼'으로 나오키상

[월요인터뷰] 사토 겐이치 "정치인보다 시민단체 나설 때 영토분쟁 해법 보이죠"
주로 중세·근대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을 써 온 일본의 역사소설가다. 1968년 일본 야마가타 현 쓰루오카 시에서 태어났다. 야마가타대를 졸업하고 도호쿠대 대학원에서 서양사와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처음부터 소설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93년 《재규어가 된 남자》로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받은 것이 그의 진로를 바꿨다. 이듬해 루이 12세의 이혼 사건을 다룬 《왕비의 이혼》으로 121회 나오키 상을 받았다. 나오키 상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에 주어지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다.

유럽언어의 근본인 라틴어를 독학해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며, 이를 바탕으로 방대한 사료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냄으로써 역사소설의 대가로 인정받는 데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 프랑스혁명》 《왕비의 이혼》 《카르티에 라탱》 《카이사르를 쳐라》 등의 작품을 썼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