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미술 분야에 투자하고 있지만 그냥 작품을 수집하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미술가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업도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죠. 순수미술에 재능을 보이고 있는 인재들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생각이에요.”

이탈리아 명품 패션브랜드 에트로(ETRO)를 수입하는 듀오의 이충희 대표(57)는 미술 분야에서 메세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중 하나다. 이 대표는 2009년 서울 청담동 본사 건물에 백운갤러리를 만들고 매년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 전시회를 열어주고 있다. 최근엔 ‘에트로미술상’을 제정하고 첫 수상작가 시상을 마쳤다.

23일 만난 이 대표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될 수 있도록 미술상을 제정했다”며 “세계적인 미술상으로 키워 한국 미술 발전에 공헌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트로미술상은 시상 규모가 큰 편이다. 총상금이 5900만원(대상 2000만원)이다. 회화 조소 비디오아트 사진 건축을 아우르는 시각미술 분야의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올해 대상 수상 작가로는 설치작가 정직성 씨(37)가 선정됐다. 우수상은 정세원 씨, 금상은 김형관 김미로 씨, 은상은 김윤선 이현지 해영 씨가 받았다.

이 대표는 “신진 화가를 지원하는 것은 미술에서 경영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술이 기업의 평판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그 창조성과 혁신의 정신을 브랜드 가치에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내 유망 작가들을 아트디렉터로 기용해 장기적으로는 앤디 워홀 같은 월드 아티스트로 키운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동안의 메세나 활동도 같은 맥락이다.

“제 집무실을 비롯해 회사 내에 그동안 수집한 그림을 걸어놨어요. 직원들에게 돈보다는 예술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죠.”

1993년 에트로의 국내 독점판매권을 따낸 이 대표의 예술 사랑은 2000년 초 절친한 선배가 수집한 그림 전부를 사라고 권하면서 시작됐다.

“생전에 윤리 교사이면서 엽전과 동경(거울) 컬렉터였던 부친이 생각나 선배에게 김기창 강요배 전병헌 이응로 등 근현대 작가 작품 30~40점을 한꺼번에 사들인 게 제 첫 컬렉션입니다.”

경기대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의 예술 사랑은 기부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0여년간 주말마다 인사동을 찾아 무명 화가들의 작품을 사고는 했다. 그림에 투자하기보다는 감사와 나눔을 실천한다는 뜻에서다.

이 대표는 2002년 백운장학재단을 세워 어려운 처지의 초·중·고·대학생 750명에게 희망을 줬다. 이런 사회공헌 활동으로 2008년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이 수여하는 코멘다토레(Commendatore) 문화훈장을 받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이 대표는 그동안 백운갤러리를 거쳐간 화가들의 그림을 팔아 불우이웃을 도울 계획도 가지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