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정치권은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고 총선에 이어 대선경쟁에 나서고 있다. 또한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의 제일 과제로 재벌·대기업 규제 혹은 해체까지를 내걸고 그 근거를 헌법 제119조 2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경제민주화가 헌법에 도입될 때도 그랬지만, 지금의 논의도 도대체 그 뜻하는 바가 무엇이고 도입배경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고, 겨우 재벌 대기업을 청산할 것이냐 혹은 규제를 어느 정도 할 것이냐를 갖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제119조 2항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애매성을 갖고 있다. 그 첫째는 일부 학계나 정치계가 보는 것처럼 마지막 구절의 경제민주화를 앞의 두 구절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균형발전과 적정 소득분배 문제, 그리고 대기업의 시장지배와 경제력집중 문제 등을 다 경제민주화 문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상 2항의 문장은 문맥상 앞의 두 구절과 마지막 경제민주화 구절을 병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법에 맞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균형발전과 적정 소득분배 문제나 재벌규제 문제는 경제민주화의 포괄 범위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는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로 특정화되는데 그럼 이 구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두 번째 애매성이 드러나는데, 1987년 헌법개정 당시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현경대 전 의원은 신헌법 해설서(《신헌법》, 박문사, 1988, 94~95쪽)에서 이 구절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부·기업·가계라는 경제주체 가운데 종전에는 정부 주도 경제운용에 치우쳤으나 민간주도로 전환해 효율성을 극대화시킴과 아울러 사용자와 근로자라는 노동경제상의 양대 주체 간의 협조를 통한 산업평화와 노사 공영의 이룩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2항 전체)는 동시에 경제에 대한 규제·조정의 방식 및 한계를 규정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당시 같이 소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종인 전 의원을 비롯해 일부 학계나 여야에서 주장하듯 ‘경제적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통한 재벌 대기업 경영의 민주화나 재벌체제의 개혁 등을 통한 서구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벤치마킹이라는 해석과는 전혀 다른 해석인 셈이다.

여기서 현 전 의원의 해석에 믿음이 가는 것은 바로 앞의 구절에서 균형발전, 복지가 언급되고 재벌의 경제력집중 문제가 언급된 상항에서 굳이 이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로 경제민주화를 다시 추가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부가 균형발전과 적정 소득분배를 추구하고 재벌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막기 위해 경제에 대해 규제·조정을 할 수는 있으나 이를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추구하는 것은 헌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민간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의 경제민주화는 오히려 정부규제·조정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으로, 경제를 규제·조정하더라도 관치경제나 사회주의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는 ‘경제 민간화’ 선언으로 이해되는 것이 마땅하다. 민주주의 절대 평등원리에 의해 경제를 관리하겠다는 사민주의 선언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은 경제민주화가 헌법의 선언이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그 본래 취지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아가 헌법을 해석하는 기관에서도 이런 헌법 왜곡을 바로잡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권이 지향하는 서구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나 복지국가 모델이 이미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좌승희 < 서울대 겸임교수·경제학, 경기개발연구원 이사장 jwa474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