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품은 보일러 시장의 ‘아이폰’ 같은 제품입니다. 6년간 공들여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이어서 자랑하고 싶어 나왔습니다.”

지난 14일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위치한 귀뚜라미 아산사업장 2층 대강당.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71)이 500여명의 건설사 관계자와 대리점주, 언론인들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1969년 고려강철주식회사(귀뚜라미보일러의 전신)를 설립한 지 43년 만에 처음으로 신제품 홍보를 위해 언론과 거래회사 등을 상대로 직접 설명회를 개최한 것. 최 회장은 그동안 “기업 경영자는 기술과 좋은 제품으로만 말한다”며 한번도 인터뷰와 제품 홍보행사를 갖지 않았었다.

그가 이날 선보인 신제품은 온돌난방용 저탕식 보일러인 ‘거꾸로 콘덴싱 보일러’와 ‘거꾸로 하이핀 보일러’ 등 두 가지.

이 제품들은 보일러 시장의 주력인 저탕식과 순간식 보일러의 장점만 취한 혁신제품이라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저탕식은 솥단지에서 물을 끓이듯이 보일러 내 온수통에서 물을 데우는 방식이고, 순간식은 온수통 없이 물을 판형열교환기를 통과시키면서 순간적으로 데우는 방식이다. 저탕식은 열효율은 좋으나 온수통 때문에 부피가 크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순간식은 효율은 떨어지지만 슬림하고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최 회장은 “2006년부터 저탕식의 효율과 성능을 유지하면서 순간식 수준으로 가격과 크기를 줄인 제품을 연구해 6년 만에 드디어 성공했다”며 “5년 안에 세계 보일러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여 동안 직접 제품의 개발 과정과 성능을 브리핑한 후 행사 참가자들을 공장 구석구석으로 안내하며 보일러뿐 아니라 냉방기, 냉동공조기 등 다른 제품의 생산과정까지 설명했다.

행사에 참가한 한 대리점 관계자는 “최 회장은 한국 보일러업계의 산증인으로 불릴 만큼 보일러 기술개발과 생산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번도 직접 또는 언론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며 “직접 나와서 제품의 특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이 신선했다”고 평가했다.

경북 청도 출신의 최 회장은 대구공업고등학교와 청구대(현 영남대)를 졸업한 공학박사 출신 기업인으로, 1962년 처음 개인사업을 시작(법인은 1969년 설립)한 후 줄곧 보일러 연구개발 분야를 직접 주도해 왔다.

그는 한국 최초 단지형 아파트였던 마포아파트에 연탄보일러를 설치한 이래 한국 최초의 기름보일러 ‘KS1호’(1968년), 한국형 온돌식 저탕식 가스보일러(1988년)를 잇따라 선보이며 보일러 신기술을 리드했다. 2000년 이후엔 ‘거꾸로 타는 보일러’ ‘4번타는 보일러’ 등 열효율성이 큰 제품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보일러 특허는 96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기 귀뚜라미홈시스 사장은 “최 명예회장은 지난해 그룹경영을 김태성 회장에게 맡긴 후에도 연구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은 계속 맡아 챙기고 있다”며 “특히 연구개발팀 직원 120명에게는 직접 일일이 전화를 걸어 기술적인 문제를 물어보고 그들의 대소사까지 신경쓴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직접 출연한 이번 행사와 관련, “귀뚜라미가 국내외 시장의 경쟁사인 경동나비엔에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신제품 출시로 수출에서 경동에 뒤지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키고, 내수시장에서도 정체된 매출을 올려보겠다는 전략이라는 것.

최 회장은 이날 “신제품 보일러와 원전용 냉동기 등을 중심으로 그룹 매출을 2015년까지 1조5000억원으로 늘리고 해외수출 비중도 현재 전체 매출의 20%에서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귀뚜라미그룹은 귀뚜라미보일러 귀뚜라미범양냉방 센추리 대구방송 등 13개 계열사를 통해 연간 9000억원의 매출(지난해 기준)을 올리고 있다.

아산=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