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누구…'노무현 비서실장'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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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16일 제1야당의 대선 대표주자로 선출됐다.
정치인의 삶을 원치 않았던 문 후보였지만 저서 '운명'을 출간한 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 급부상했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이 있었지만 이제는 '노무현의 비서실장'이 아닌 '대선 후보 문재인'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문 후보는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 후보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랐다. 문 후보 가족은 문 후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지만 연탄배달을 하고, 때로는 성당의 식사배급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다.
문 후보는 경남중·고를 거쳐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중고교 때 별명은 `문제아'. 실제로 술과 담배를 입에 대고 4번의 정학을 받은 문제학생이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는 `반유신' 투쟁에 나선 운동권이었다.
1975년 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하다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문 후보는 석방되기 무섭게 강제징집돼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후보는 변호사가 되기로 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때 그가 만난 사람이 노무현 변호사였다.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 5월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결성됐을 때 노무현 변호사가 상임집행위원장, 문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을 맡을 정도로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때 문 후보는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아 다시 결합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부탁으로 문 후보는 2번의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으로 청와대 생활을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문 후보도 양산에 거처를 마련했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장례 전반을 관장했다.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아왔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정치인의 삶을 원치 않았던 문 후보였지만 저서 '운명'을 출간한 뒤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 급부상했다.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이 있었지만 이제는 '노무현의 비서실장'이 아닌 '대선 후보 문재인'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문 후보는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 후보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랐다. 문 후보 가족은 문 후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지만 연탄배달을 하고, 때로는 성당의 식사배급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다.
문 후보는 경남중·고를 거쳐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중고교 때 별명은 `문제아'. 실제로 술과 담배를 입에 대고 4번의 정학을 받은 문제학생이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는 `반유신' 투쟁에 나선 운동권이었다.
1975년 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하다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문 후보는 석방되기 무섭게 강제징집돼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후보는 변호사가 되기로 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때 그가 만난 사람이 노무현 변호사였다.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 5월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결성됐을 때 노무현 변호사가 상임집행위원장, 문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을 맡을 정도로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때 문 후보는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아 다시 결합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의 부탁으로 문 후보는 2번의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으로 청와대 생활을 이어갔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문 후보도 양산에 거처를 마련했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장례 전반을 관장했다.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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