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11주년이 된 11일(현지시간) 리비아와 이집트에서 무장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와 3명의 영사관 직원 등 4명이 사망했다. 이번 사태는 이 지역에 잠재된 반미 정서가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영화 한편에서 시작된 파장

사건의 발단은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영화였다. ‘무슬림의 순진함(Innocence of Muslims)’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이슬람교의 성인인 무하마드를 사기꾼으로 묘사하고, 이슬람권에서 욕으로 쓰이는 ‘당나귀’를 이슬람교도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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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반 이슬람교 단체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현지 매체는 며칠간 이 영화를 비판했고, 일부 강경 이슬람 성직자가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뒤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대사관이 있는 수도 트리폴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시위 소식을 듣고 벵가지 영사관에 들려 직원들의 대피를 돕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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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델 모넴 알 후르 리비아 최고치안위원회(SSC) 대변인은 “벵가지에 있는 미국 영사관 바깥에서 리비아군과 무장시위대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며 “영사관 건물 바깥을 치안 병력이 둘러쌌으며 도로가 폐쇄됐다”고 말했다. 그는 “무장 시위대가 진입을 시도하며 공격하자 건물 안에 있던 영사관 경비 병력도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며 “인근 농장에서는 영사관을 향해 수류탄도 발사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미 외교기관 안전확보 명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의 살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성명을 내고 “행정부가 리비아에 있는 미국인의 안전을 지원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을 깎아내리려는 노력을 거부하지만, 동시에 공익을 위해 일하는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이런 류의 무감각한 폭력에 철저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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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성명을 통해 미국 영사관에 대한 공격을 강하게 비난했다. 힐러리 장관은 “리비아 대통령에게 리비아에 있는 미국인들을 보호하는데 추가적인 지원과 협력을 부탁했다”며 “리비아 정부도 (미 대사관 공격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으며 정부가 최선을 다해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시위는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발생했다. 2000여명의 이집트 시민은 이날 미국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대사관 안뜰을 가로질러 미국 국기를 끌어내렸고 담 위에 서서 성조기를 훼손했다. 또 성조기에 불을 붙여 바닥에 팽개치고 발로 짓밟았다.

남윤선 기자/워싱턴=장진모 특파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