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실종됐던 40대 한국인 사업가가 실종 20여일 만에 현지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를 검거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업가 정모씨(41)를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강도살인 및 사체유기)로 필리핀 현지에서 체포된 김모씨(34) 등 한국인 3명을 넘겨 받아 조사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김씨 등은 지난달 2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차량으로 정씨를 납치한 뒤 앙겔레스로 이동, 목을 졸라 정씨를 살해한 뒤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선물옵션 투자자로 알려진 정씨는 필리핀에서 진행 중인 카지노 사업 때문에 지난달 13일 필리핀을 방문했다.

마닐라에 머물며 업무를 보던 정씨는 같은 달 22일 김씨 일당에게 납치됐다. 이들은 정씨에게서 2700만원을 빼앗고 살해한 뒤 마닐라에서 3시간 거리인 앙겔레스의 한 다세대주택 뒷마당 웅덩이에 시멘트를 부어 매장했다.

이들은 시신이 발각될까봐 범행 직후 이 다세대주택을 1년간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정씨의 가족이 필리핀 현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것은 다음날인 같은 달 23일. 현지 경찰은 휴대전화 추적 끝에 이들을 잡아내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지난 8일 정씨의 시신도 찾아낸 뒤 한국 경찰에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정씨의 가족이 사설 탐정을 고용해 필리핀 현지로 급파하는 등 범인 검거에 큰 힘을 보탰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된 정씨의 통화내역도 가족이 찾아냈다고 한 필리핀 교인이 전했다. 가족이 범인을 추적하는 데 쓴 돈만 1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 등이 현지 카지노에서 수억원을 잃자 재력가로 알려진 정씨의 현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 중 일부가 정씨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마닐라의 호텔 카지노에서 주로 어울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달아난 공범 A씨를 추적하는 한편 김씨 등을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추궁 중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