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임시켜야 합니다. 임기(4년)가 1년 반이나 남았습니다. 섣불리 교체했다가 한국은행 독립성 운운하면서 노조가 들고 일어나면 한은의 협조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2008년 3월, 강만수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성태 한은 총재의 유임을 건의했다. 강 장관은 이 총재의 대통령 면담도 주선했다. 이 총재에겐 강력한 ‘유임’ 신호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증언.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총재의 유임을 주장한 사람은 강 장관이었다. 강 장관은 나중에 금리 인하 등으로 이 총재와 그렇게 대립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MB정부 출범 이후 이 총재에 대한 경질론은 계속 고개를 들었다. 청와대 내에선 이 총재가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 등 정부의 금융위기 극복 노력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었다. 이 총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2년 선배이기도 했다. 그런 주장을 막은 건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현 은행연합회 회장)이었다.

박병원의 증언. “‘이성태를 자르는 순간, 그는 한은 역사에 길이 남는 독립투사가 된다. 왜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줘야 하느냐’는 논리로 경질론을 방어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한은의 협조를 받기 위해서였다. 한은 내부 출신인 이 총재를 경질했다가는 한은이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릴 게 뻔했다.”

박 수석은 강 장관과 이 총재의 갈등에도 중재자로 나서곤 했다. 그는 재정부와 한은이 부딪칠 때면 한은을 직접 찾았다. 하지만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은을 공개적으로 방문할 수는 없는 일. 박 수석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은 뒷문으로 들어가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총재실로 올라갔다. 이 총재를 만나서는 읍소하다시피 호소했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부산 사람 3명이 경제 망쳤다는 소릴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협조 좀 해주십시오.” 공교롭게도 강 장관과 이 총재, 박 수석 모두 부산에서 태어났거나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렇다면 이 총재는 당시 본인의 경질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성태의 증언. “나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관심을 가진들 어떻게 했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기관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잣대는 두 가지란 점이다. 임기가 얼마나 기냐, 그리고 그 임기를 보장해주느냐 여부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임기도 끝나지 않은 한은 총재를 바꾸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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