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단기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뒤 한풀 꺾였던 유럽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사진)는 ECB가 국채 매입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구제금융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스는 ‘트로이카(ECB, 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와 추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긴축안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라호이 총리는 10일(현지시간) “구제금융을 신청했을 때 우리에게 특정 부문을 긴축하라는 요청을 한다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이 자국 재정에 간섭하려 한다면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6일 만기 3년 이내의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채권 매입을 원하는 국가들은 먼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나 유로안정화기구(ESM)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엄격한 긴축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라호이 총리가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으면 ECB는 스페인의 국채를 매입할 수 없다. 이 경우 스페인의 국채 금리는 다시 올라가게 된다.

한편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그리스를 방문 중인 ‘트로이카’ 대표단과 긴축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트로이카는 추가 구제금융 310억유로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그리스에 앞으로 2년간 115억유로를 긴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는 긴축 방안을 트로이카 측에 제출했지만 “구체적 시행 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마라스 총리와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당과 민주좌파는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긴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트로이카의 그리스 구제금융 집행 결정은 이르면 이달 중 나올 예정이다. 협상이 최종 결렬돼 31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그리스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