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경제 민주화’ 내전이 박근혜 후보의 ‘혼란 경계령’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헌법정신이라는 ‘미화’와 정체불명이라는 ‘격하’가 충돌하자 박 후보가 신중한 대처를 주문하고 나섰다. 대치 당사자 모두 경제민주화 목표는 구체적인 것은 아니며 추상적 수준이란 점은 동의하고 있다.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목표에 대해 ‘한 세력이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그냥 ‘민주화’의 목표처럼 들리고 내각책임제 장점을 부각시킨 정치민주화와 가까운 느낌이다. 국제경제 동반침체의 심각한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양극화 해소와 공정분배 등 다급한 과제를 제쳐놓고 대기업 규제만 부각시켰다는 인상이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명확한 목표 제시도 없이 아이디어 차원의 규제 화살을 사방으로 쏘아대는 무적방시(無的放矢)를 ‘실천’하고 있다. 고용악화와 가계부채로 서민생활 궁핍이 심각한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 대책을 제쳐두고 대기업 쪼그라뜨리기 규제를 쏟아내는 것은 잘못된 표적에 활을 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다.

순환출자 및 금융업 겸업 규제의 도마에 오른 대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다. 이들의 주력제품인 휴대폰, 자동차, 선박 등은 수출비중이 매우 높아 자본규제를 통해 규모를 억누르더라도 반사이익이 국내기업에는 돌아가지 않고 애플 등 경쟁대상 다국적기업 차지가 될 것이다. 대기업계열 생명보험, 손해보험 등의 금산분리 강화는 고객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억지 주장은 예금고객의 선호도를 조사하면 금방 들통날 거짓말이다. 대기업계열 제2금융권 규제에 대한 반사이익도 외국계 경쟁사에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대기업은 기술개발과 해외시장개척을 통해 수출을 늘려야 한다. 협력회사와 납품단가 협상에 대한 공정거래 차원의 감시는 실효성 있게 강화하고 일자리 창출 실적에 따른 세금감면 등 정부지원을 차등적으로 적용해 일자리 중심의 기업정책을 정착시켜야 한다.

서민층에 불리한 부담을 가려내 개선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정부가 수익금을 챙기는 복권사업은 작년 기준으로 판매액은 3조원이며 당첨금은 판매액의 절반 정도다. 당첨금에는 22%의 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판매액의 60%는 위탁사업자와 정부 몫이다. 위탁사업자에게 2800억원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남은 수익금 1조2300억원과 세금 3400억원을 정부가 챙겨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분했다. 복권은 부유층이 외면하고 서민과 빈곤층이 주로 구입하기 때문에 빈부격차 심화를 유발한다. 구입을 장려하기보다는 실상을 제대로 알려 자제하도록 권유해야 한다.

가구별로 매달 2500원씩 징수하는 방송수신료도 문제다. 수신료는 시청채널의 종류나 시청량과 관계없이 TV수상기 소지만으로 납부의무가 생기는 공적부담금이며 가정용은 가구별로 수상기 1대분만 부과한다. 소형 수상기 1대를 보유한 서민이나 여러 대의 고급 수상기를 보유한 부유층의 부담은 똑같다. 한전 전기료와 통합징수하는 수신료를 가구별 전기료에 연동시킨 차등부과방식으로 전환하고 전기 사용량이 적은 서민층에 대한 면제를 확대해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면서 소요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서민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은행 대출모집인의 대출권유 문자메시지와 팩스가 답지하고 전화도 계속 걸려온다. 거액의 통신비와 모집인이 차지하는 수수료는 돈을 빌리는 서민 부담으로 귀착된다. 특히 외국계은행이 대출모집인을 확대해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데 이런 비정상적 영업방식을 금융당국이 왜 방치하는지 알 수 없다.

여야 정치권은 국제경제의 심각한 상황을 철저히 분석해 경제 활성화와 서민생활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연말 대선에서는 대기업 규제와 같은 퇴행적 공약보다는 시장경제 활성화 및 공평분배 정착과 서민생활 안정 및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실속 있는 공약으로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