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잠자던 초등학생, 4세 여아, 임산부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성폭력 범죄가 잇따르자 경찰이 ‘방범비상령’을 선포하고 치안 강화에 나섰지만 ‘특별순찰 강화지역’으로 지정된 곳 인근에서도 여고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난무하는 성범죄 대책의 일환으로 경찰이 불심검문을 2년 만에 부활시킨 지 5일 만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7일 광주광역시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6일 밤 11시25분께 광산구의 한 주택가 공사장 인근에서 귀가 중이던 고등학교 1학년 A양(16)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A양은 광산구 장덕동 하나로마트 입구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뒤 1㎞가량 떨어진 집까지 걸어가던 중이었다.

범인은 A양에게 접근해 흉기를 들이대며 “소리지르면 죽인다”고 위협, 큰길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원룸 신축 공사장 2층 방으로 끌고가 성폭행한 뒤 달아났다. A양은 경찰에서 “도로를 건널 때 누군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 빠른 속도로 걸었지만,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갑자기 낚아채 끌고 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당시 해당 공사장 옆에는 상점 한 곳이 환하게 불을 켠 채 창문을 열어놓고 영업 중이었다. 게다가 이 지역은 경찰이 지난 8월부터 특별순찰 강화지역으로 지정, 집중적으로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는 ‘치안 올레길’ 인근이었다. 사건 당일에도 인근 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2시간마다 차량 및 도보 순찰을 벌였지만, 범인은 ‘보란 듯이’ 순찰을 피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해당 지구대 관계자는 “고정 근무가 아니라 도보 순찰이라 범행 현장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A양은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한 채 귀가했고, 이를 알게 된 부모와 함께 병원에 도착해서야 경찰에 알렸다. 이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지 2시간이 지난 7일 새벽 1시20분께 신고를 접수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A양은 특별한 외상은 입지 않았으나, 성폭행에 따른 충격으로 극도의 불안한 상태를 보여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던 키 173㎝가량의 남성을 쫓고 있다. A양의 몸에서 체액 등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도 의뢰했다.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데다 신원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여서 사건 현장 인근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박모씨(40·여)는 “지금도 범인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이웅혁 경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폭력 범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은 순찰을 강화하는 ‘판박이’ 대책만 내놓고 있다”며 “주거환경 개선과 치안 인프라 구축에 대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최성국/하헌형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