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법무법인 충정 대표(64)는 감투가 많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초대 회장을 맡았던 재경 부여군민회 회장부터 한국포렌식학회장, 대한공증인협회장 등등. 여기에 더해 지금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 등 내로라하는 관료 출신과 저명 인사들이 수두룩한 회현로터리클럽 차기 회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까지 받고 있으나 고사 중이다. 독일 유학 시절 바그너를 접한 것을 계기로 동호회에 가입했더니 대뜸 부회장직을 맡기더란다. 그러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 맛있는 만남 인터뷰도 중국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지난 5일 급하게 날을 잡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들끓고, 모임에서는 감투를 맡기고 싶어하는 그는 한마디로 ‘인복’과 ‘일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비결이 뭘까.

◆인권보호 과잉, 가정 파탄낸 흉악범 인권까지

서울 서초동 ‘가연’. 빼곡히 들어선 빌딩 사이로 정갈히 다듬어진 소나무 정원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한정식 전문점이다. 김 대표는 인정미 넘치는 이 집 주인과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 맛에 마음을 빼앗겨 단골이 됐다고 한다. 식욕을 돋우는 회 샐러드가 먼저 나오고 이 집의 대표 음식인 전어조림, 사골요리와 삼합, 계란탕, 보리굴비 등 다채로운 요리가 차려졌다.

바깥 날씨가 더워 시원한 맥주라도 주문하려 했으나 김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중국에 다녀온 얘기부터 꺼냈다. 최근 중국 산둥성 취푸에서 한국과 중국 법조계 및 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제5차 한·중 형사소송법 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이 그동안 경제가 발전하면서 피의자 인권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간 문제됐던 고문, 억압, 허위 진술 강요 등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 3월 16년 만에 법을 고쳤죠. 한국의 형사소송법을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2000년 대구지검 검사장 시절 중국 검찰과 업무상 잦은 교류를 가졌고 한·중 비교형사법 회장을 지내면서 지금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사법제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을 내비치던 김 대표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는 “출장 가 있는 동안 중국 TV에 한국 성범죄 뉴스가 집중 조명돼 연일 나왔다”며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국내 성범죄 사건에 대한 얘기로 자연스레 화제가 넘어갔다. “남의 집에 침입해 아무런 이유 없이 여자를 성폭행하고 처참히 죽여 한 가정을 파탄내는 흉악범에 대해 인권을 논할 수 있나요.” 사건 피의자에 대해 중국 공안당국이 가혹할 정도로 형을 집행한다면 반대로 한국은 피의자 인권을 과잉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신장애와 인격장애는 구분해 다뤄야

주제가 사형제 쪽으로 막 옮겨 가려는데 음식점 주인이 아는 체하며 김 대표 옆에 앉았다. 법성포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보리굴비를 찢어 쟁반에 담기도 하고 올갱이아욱국을 권하기도 했지만 김 대표는 할 말이 많아서인지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사형제 존폐에 대한 그의 입장은 명쾌했다.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인육도 먹는 흉악범에 대해 사형 집행을 안 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범죄자에 대해 최소한 범위 내에서 골라 사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사형제가 언젠가 없어질 제도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김 대표는 부친이 의사여서 의대 진학도 고민해봤다고 한다. 평소에도 법학과 의학이 접하는 대목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던 차에 독일에 유학하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처벌을 테마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한양대에서는 ‘정신장애 범죄자의 책임과 처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신장애와 인격장애를 구분해 다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는 “정신장애의 경우 별도로 수용해 치료 감호를 하는 등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화학적 거세처럼 무조건 약물을 투여한다는 것은 반인륜적인 일이지만 정신병자가 아닌 인격장애자라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는 객관적 의무, 판사는 공동체 가치 말해야

음식 가짓수는 적지만 메뉴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담백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싱싱한 해초와 세꼬시가 나왔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듯한 싱싱한 해초와 세꼬시를 한 쌈 만들어 입에 넣으니 바다내음이 물씬 풍겼다. 톡톡 터질 듯한 해초들의 독특한 식감은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한점 싸 급히 입에 넣은 김 대표는 혈기왕성했던 검사 시절 얘기를 꺼냈다. 김 대표는 법무부 검찰1과장, 대통령 비서실 법률비서관,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엔 김대업 사건을 떠맡았다. 그러고는 2002년 10월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당시 여당을 당혹케 한 수사 결론을 내놓았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 정연 씨의 병역 면제 의혹에 신빙성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로 그는 한 달 뒤 인사에서 대구고검 차장으로 좌천됐다.

그에게 요즘 후배 검사에 대한 평을 부탁했다. “우리는 독일법을 가져왔습니다. 독일 검사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관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검사라고 무조건 ‘찌르고’ 삐딱하게 사물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사환경이 예전에 비해 나빠진 탓도 있지만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죠. 적법 절차를 너무 강조하는 측면도 없지 않고….”

최근의 법원, 판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독일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의 말을 인용, “양심에 반해 설교하는 목사는 경멸해야 하지만, 양심에는 반해도 법률에 충실한 재판관은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함축하고 있는 명언이다.

김 대표는 “법관은 자신의 소신과 주관을 말해서는 안 된다. 사회 공동체의 공동 가치를 선언하는 게 판사의 몫이라는 선배 법조인의 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충정은 고객의 60%가 외국계 기업

법무법인 충정 홍보도 좀 하고 싶다는 기색이 김 대표 얼굴에 가득했다. 수정과를 들고 밥상에서 물러나 운을 떼니 충정 자랑이 쏟아졌다. “135개국 160개 이상 로펌들로 이뤄진 세계 최대 로펌협회 렉스문디에 한국에서는 충정이 유일하게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고객의 60% 이상이 외국계 기업입니다. 5년 뒤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외국 로펌과 합작도 얼마든지 추진할 용의가 있습니다.”

"공직생활 내내 중용·과유불급 실천위해 노력"

충정은 기업 변호사 1호로 통하는 황주명 변호사(현 회장)가 중심이 돼 1993년 설립됐다. 의료·제약 분야 실력자 목근수 변호사와 기업 인수·합병과 정보통신 분야에 정통한 박상일 변호사 등 3명이 뭉쳤다고 해서 영문 명칭은 이들의 성을 따 ‘HWANG MOK PARK’으로 했다. 2007년 다국적 기업 사건 전문가들이 주축인 서울로그룹 인수, 2009년 판·검사 등 전관들이 대거 몰려 있던 한승과의 합병으로 국내 7~8위권 로펌으로 성장했다.

◆딸바보, 일요 과부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지 한 시간가량 흘렀을까. 김 대표는 “무거운 얘기는 그만하자”며 가지고 온 서류 봉투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딸 지윤씨(32)가 최근 쓴 책을 자랑하려는 참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직계는 아니지만 조상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문집을 내셨고, 딸도 책을 쓰고. 집안 내력인가 보다. (웃음)” 문학에 남다른 소질을 갖고 있던 김 대표는 서울대 법대 학술지인 ‘피데스(Fides)’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지윤씨도 아버지의 이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현재 시인으로 활동 중이다. 딸 얘기를 하는 내내 그의 입은 함지박만큼 커져 있었다. 평생을 함께해온 부인에 대한 미안함도 내비쳤다. 친척 소개로 만났는데 첫 인상이 ‘여기 여자가 있구나’였단다. 은근히 자랑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입니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 잠시 놔주고 또 나를 필요할 때는 과감히 부르는 지혜로운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다만 초임 검사 시절 일에 미쳐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 주변에서 ‘일요 과부’ 만들지 말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죠. 지금 생각해도 미안할 뿐이에요.”

◆왕성한 활동 비결은 중용과 과유불급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을 끝으로 27년 검사 생활을 접은 그는 2004년부터 충정 대표를 맡았다. 대형 로펌 살림살이가 간단치 않을 텐데 가욋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초대 재경 부여군민회 회장인 김종필 전 총리에 이어 2010년부터는 군민회 회장을 맡고 있다. IGMP(세계경영연구원 최고경영자 과정) 700인 CEO클럽 초대 회장도 지냈으며, 최근에는 대한공증인협회장을 맡아 계약문화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이곳저곳 찾는 곳이 많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오랜 공직 생활 속에서 ‘중용’과 ‘과유불급’ 두 단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으니, 혹시 정치판에 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나이도 있고 정치판의 논리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 이유다. 주말에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그는 “바쁜 검사 시절 듣지 못했던 클래식 음악을 아내와 차 한잔 하며 듣는 게 낙”이라고 말했다.


김진환 대표의 단골집 가연

남도 특유의 깊은 맛…가정집 같은 분위기 '편안'

가정집을 개조한 ‘가연’은 남도 특유의 깊은 맛에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오랜 단골이 많다.

지하철 3호선 교대역 14번출구로 나와 GS칼텍스 주유소 골목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100m가량 걸어 들어가면 보인다. 마당에는 아담하면서도 잘 정리된 정원이 있다. 원예를 공부한 식당 주인이 직접 풀과 나무를 다듬는다. 식당 안에 7개의 방이 있으며, 어느 방이나 6~7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꾸민 인테리어가 소박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단품 메뉴는 없다. 모두 한정식 코스 요리로 점심은 1인당 3만5000원, 저녁은 1인당 8만원과 10만원 두 가지다. 대표 메뉴는 병어조림과 가자미조림. 제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새벽 시장에서 매일 재료를 조달한다. 영업시간은 점심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저녁은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주말은 예약이 있을 경우 영업한다. (02)522-1958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