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노키아의 ‘윈도폰 올인’은 무모한 도박으로 끝나나. 노키아가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모바일 운영체제(OS) ‘윈도폰8’을 탑재한 스마트폰 2종을 내놓았으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키아 주가는 이날 뉴욕증시에서 15.9%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노키아 신제품에 대해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고 평가했다.

노키아가 내놓은 신제품은 4.5인치 화면의 ‘루미아 920’과 4.3인치 ‘루미아 820’이다. 특히 ‘시냅틱스 클리어패드 시리즈 3’라는 고감도 멀티터치 기술을 적용해 장갑을 낀 상태나 손톱으로도 터치스크린을 작동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퓨어모션 HD+’란 기술을 적용해 DSLR 카메라에 버금가는 고화질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주변시설에 카메라를 대면 관련 정보가 뜨는 ‘시티렌즈’라는 가상현실 기술도 이색적이다. ‘노키아뮤직’ 스트리밍 서비스도 무료로 즐길 수 있고 플러그를 꽂지 않고도 충전할 수도 있다. 윈도8을 탑재한 PC나 태블릿과 쉽게 호환되는 장점도 있다. 스티븐 엘롭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루미아 920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스마트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런 강점들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컴퓨터월드는 "루미아 920은 디자인을 아주 잘했고 몇 가지 혁신적인 면도 있지만 노키아를 살리기엔 역부족"이라고 평했다. ‘꽤 괜찮은 폰'이지만 '게임 체인저'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 7월 말부터 신제품 기대로 반등했던 노키아 주가는 이날 신제품 발표 직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급락했다.

무엇보다 판매 시점과 가격을 밝히지 않은 게 실망 요인이 됐다. 어느 통신사를 통해 언제부터 얼마에 팔겠다고 밝히지 않은 것이 ‘통신사들을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됐다. 제조사 쪽을 봐도 우군이 없다. 삼성이 지난주 윈도폰8 탑재 신제품을 1종 공개한 것을 제외하곤 윈도폰 소식이 거의 없다.

윈도폰 진영은 생태계도 취약하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 앱(응용 프로그램)은 각각 50만개가 넘는 반면 윈도폰 앱은 10만개에 불과하다. 개발자들이 윈도폰 앱 개발에 주력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노키아로서는 윈도폰8을 탑재한 신제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노키아는 자체 OS인 심비안을 버리고 윈도폰에 모든 것을 건 상태다. 그러나 노키아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SA 기준)은 2010년 33.4%에서 올해 2분기엔 6.8%까지 떨어졌다.

스티븐 엘롭 노키아 CEO는 2년 전 노키아와 심비안을 ‘불타는 플랫폼’에 비유하며 “바다로 뛰어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바다가 윈도폰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구명정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노키아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상태로 추락했고 시장점유율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윈도폰8 탑재 신제품마저 역부족이라면 난감한 노릇이다. 이제 노키아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판매 개시 후 반응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