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암흑기, 대한민국 고액자산가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 머문지 오래고, 부동산 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경제 저성장 기조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액자산가들은 그동안 자신만의 재테크 경험과 노하우를 앞세워 거센 풍파를 헤쳐나가고 있다.
<한경닷컴>은 자산 20~30억원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들의 자산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10명을 심층 인터뷰해 빈사 증시 생존전략의 속살을 들여다 봤다.

증시 침체기에 한국의 슈퍼리치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어떻게 지켜냈고, 어떤 금융상품에 주목했는지, 그 투자비법을 10회에 걸쳐 공개한다. <편집자 주>

"금융자산만 50억원 이상이니 전체 자산은 수백억~1조원에 달합니다. 세금을 41.8% 꽉 채워 내시는 분들이다보니 자연히 절세 상품을 많이 찾으시구요, 요새는 고객분들이 직접 상품 아이디어를 주시면 사모로 상품을 꾸려드리기도 합니다."

신한PWM 프리빌리지 서울센터는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 고객 내에서도 최고 자산가들만을 담당하는 '전국에 딱 하나 있는' 지점이다.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의 합작으로 지난해 12월에 설립된 이 센터는 주로 길가에 위치한 일반 증권 지점과 달리 숭례문 옆 대한상공회의소 빌딩 9층에 자리를 잡았다. 눈에 띄는 간판도 없고, 특별히 홍보도 하지 않는다. "기존 고객분들의 입소문이 유일한 홍보수단이죠." 최준규 신한PWM 프리빌리지 서울센터 PB 팀장의 말이다.





◆"자산가들은 두 발 앞서 투자…안정성·수익 높은 사모 상품 인기"

진짜 '큰 손'들은 달랐다. 최근 금융 시장이 부진해 투자처를 변경하려는 고객들이 많지 않냐는 질문에 최 팀장은 "고액 자산가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데다 시장이 변화하기 전에 이미 대비를 해놓는다"며 난감해했다.

그래도 한국인이 가장 돈을 많이 묻어둔다는 부동산이 침체됐지 않느냐고 재차 묻자 그는 "부동산 시장 침체는 주택시장 얘기고 일부 지역의 상업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탄탄하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고액 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최 팀장은 "자산이 많을 수록 부동산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보통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 비율이 7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금융자산만 한정한다면 정기예금 등 금리형 상품이 3분의 1, 주가연계증권(ELS)이 3분의 1, 주식·채권 등 직접 투자가 3분의 1 수준이다. 안정성과 고수익을 고려해 자산을 균형 있게 배분하는 모습이다.

세율이 높다보니 방카슈랑스, 즉시연금, 물가연동채권 등도 인기가 높다. 특히 물가연동채권은 세제 개편안에 따라 2015년 신규 발행분부터 면세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에 기존 발행 물량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었다는 것.
최 팀장은 "그런데 자산가 중에는 이미 물가연동채권을 갖고 계신 분이 많아 채권 가격 상승으로 오히려 보유 자산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며 "언제 정리할 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귀뜸했다.

고액 자산가들만을 위한 상품을 사모 형태로 꾸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모 메자닌펀드(Mezzanine Fund)를 만들었는데 최소 목표수익률은 7%지만 15%는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메자닌펀드는 채권과 주식의 중간 위험단계에 있는 상품인 메자닌에 투자하는 펀드다. 메자닌은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 공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안전자산인 선순위대출과 위험자산인 보통주 사이의 중간단계에 있는 모든 금융상품을 통칭하는 용어다.

후순위채권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교환사채 상환전환우선주식 등 주식 관련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다.

SK하이닉스, 가스공사가 해외에서 발행하는 채권도 안정성과 고수익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기회다. 국내에서는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들이 해외에서는 '정크본드' 수준으로 발행돼 금리가 높다는 설명이다.

최 팀장은 "각 증권사가 제시하는 0.01~0.02% 금리 차이를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정말 특별한 상품을 제공받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라며 "사모 상품 때문에 기업이나 자산운용사 관계자들과 만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론 채권, 장기적으론 우량주·中 증시 투자 기회"

그렇다면 일반투자자들에게 투자의 기회는 없는 것일까. 최 팀장은 반색하며 "오히려 지금이 투자 기회"라고 강하게 말했다. 최 팀장은 사모 상품을 제외하면 개인 자산을 고객과 똑같은 포트폴리오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연내 금리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금리가 인하되면 채권가격은 상승할 테니 단기적으로 채권을 사두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침체 때문에 금리를 내렸다면 금리를 올린다는 건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주식의 수익률이 가장 좋을테니 우량주를 사서 묻어놓으라"고 조언했다.

최근 최 팀장이 고객들에게 추천하는 주식은 SK이노베이션,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다. 보통 3종목에 압축투자하는데, SK이노베이션과 삼성전자의 비중을 줄이고 LG전자를 담아가고 있다고 한다. 최 팀장은 "LG그룹 회장이 스마트폰 사업을 직접 챙긴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고 옵티머스G도 곧 출시될 예정이라 LG전자의 기업 행태가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들은 중국 증시에 대한 관심도 높다. 2007년 6000선까지 올라갔던 상하이종합지수가 현재 2000대까지 떨어져 바닥에 근접했다는 시각이다. 상하이종합지수가 2000대에서 맴돌고 있는 만큼 투자하기 불안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최 팀장은 "적정가격이 4000원인 물건을 예전에 6000원에 팔다가 2000원에 팔고 있는 격"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안 산다고 해서 좋은 물건을 안 사는 건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종잣돈이 많지 않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상장지수펀드(ETF)를 권했다. 그는 "투자처가 섹터별로 명확하게 나눠진 펀드가 아니라면 ETF가 낫다"고 잘라 말했다. 펀드 100개의 수익률을 살며보면 상위 30위 정도가 시장 수익률을 따라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펀드는 수익률이 들쭉날쭉해 꾸준히 30위 안에 드는 펀드가 거의 없다며 차라리 시장 평균을 따라가는 ETF가 낫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주식에 직접 투자할 때는 투자 기업의 재무 정보를 챙겨볼 것을 주문했다.

최 팀장은 "일반인이 재무제표를 해석하기 어렵지만 그림은 보기 쉽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아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기업의 주당순이익(EPS) 등 수년치 재무제표를 그래프화시킨 무료 애플리케이션(My Analyst)이 있다"며 "투자자들이 보다 재무 정보에 근간한 투자를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정인지 기자 inj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