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가 뭐래도 대선의 계절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대선후보들의 정책 논쟁보다는 역사관 논쟁이 한창이다. 그것도 주로 5·16이나 유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달아오르고 있다. 역사관 논쟁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마땅히 대선 후보라면 우리 공동체의 역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 언론으로부터 질문을 받기 전이라도 자신의 역사관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대선후보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국민들에 대한 도리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역사관 논쟁을 보면 의아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5·16과 유신에 대해서만 묻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대사에는 5·16밖에 없는 것인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삼척동자도 인정할 정도로 자유와 번영의 공화국이 됐다면, 그 여정은 시시포스가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은 것에 비견될 만큼 파란만장한 스토리일 텐데, 어떻게 그 역사가 5·16과 유신뿐일까. 우리는 1945년 8월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래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을 했고 토지개혁을 함으로써 개혁의 자유민주공화국임을 내외에 천명했다.

그런가 하면 1950년 북한의 6·25 남침에 맞서 맨주먹으로 자유를 지켜냈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도움이 컸다. 그 뒤 휴전과 더불어 한·미 동맹을 맺음으로써 안보를 굳건히 했다. 또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혁명도 일궈냄으로써 자유공화국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희구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5·16으로부터 시작되는 박정희 시대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무장하면서 패배의식을 추방하고 근대화 혁명을 일궈냈다. 그 후 1987년 민주화를 통해 명실공히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 정착됐다.

그렇다면 이런 중요한 역사적인 흐름에 대해 마땅히 대선후보라면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나 건국의 초석이 된 5·10 총선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옳았던 것인가, 아니면 불참하는 것이 옳았던 것인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1948년 12월 유엔총회의 결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한민국은 친일파 청산을 잘못했기에 도덕적 정통성을 결여한 부정의한 국가에 불과한 것인가. 혹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이른바 ‘결손국가’에 불과한 것인가.

유상몰수·유상분배로 특징지어지는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은 무상몰수·무상분배로 불리는 북한의 농지개혁에 비해 성공적인 농지개혁인가. 그뿐만 아니다. 대선 후보들은 6·25 전쟁이 어떤 전쟁인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한 통일전쟁’인가, 아니면 자유를 지키기 위한 자유수호전쟁인가. 또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미 동맹은 미국의 신식민지로 편입하게 된 계기였는가, 혹은 우리의 자유와 안보를 뒷받침한 보루였는가. 특히 대선후보라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인지, 아니면 피와 땀, 눈물로 자유와 번영을 일궈낸 보람찬 역사인지 꼭 집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관은 어느 특정한 대선 후보에게만 물어봐야 할 특정한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87년 민주화의 꽃을 피웠지만 그 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으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대선후보라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당당하게 의견을 밝혀야 한다. 자신들이 어떤 역사관을 갖고 있는지 당당하게 밝히지는 않고 특정 후보에게만 5·16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불공평한 일이다. 대선은 미래를 향해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어떻게 운항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하나, 대선후보의 미래비전을 알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과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어느 누구의 역사관을 비판하기에 앞서 솔직하고 명쾌하게 자신의 역사관을 밝히고 국민들로부터 겸허하게 평가와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