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이 코오롱에 대해 듀폰의 아라미드 섬유 기술을 무단 도용했다며 작년 11월 1조원 배상 판결에 이어 향후 20년간 전 세계 생산·판매금지를 명령한 것은 근시안적 배타주의로 볼 수 밖에 없다. 그것도 듀폰 본사가 위치한 동네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평결하고, 듀폰을 변호하는 로펌에 21년간 몸담았던 판사가 판결했다. 코오롱의 대미 수출액이 고작 33억원인데 300배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던 배경이다. 법리 다툼에 앞서 판결의 공정성부터 의심스럽다.

더구나 미국 동네법원이 20년간 세계 어디서나 만들지도 팔지도 말라고 명령한 것은 아무리 듀폰의 홈그라운드라고 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일개 지방법원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판결이 가능한 일인지 납득이 안 간다. 그나마 미 연방항소법원이 코오롱 측의 가처분 긴급신청을 받아들여 코오롱의 아라미드 공장은 당분간 재가동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가처분 심리 때까지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서 소위 동네 배심원들의 국수주의적 평결을 목도했다. 다른 나라 법원에선 거의 인정받지 못한 일반적인 디자인조차 특허로 인정해 조(兆)단위 배상금을 물린 그들이다. 뒤이어 애플이 삼성의 주력인 갤럭시S3에도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해 삼성으로선 또다시 원정 송사에 휘말리게 됐다. 미국 기업과 경합하는 한국 기업은 언제 어디서 미국 동네법원의 소송폭탄을 맞을지 모를 일이다.

세계경제가 추락하면서 각국마다 자국산업 보호를 강화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삼성 코오롱이 당한 것처럼 법을 빙자해 무역장벽을 더 높이 쌓는 나라가 비단 미국뿐이겠는가. 소송에 악용될 조그만 빌미도 주지 않도록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길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지난 200년간 세계경제가 비약적으로 신장한 것은 혁신과 경쟁 덕이었고, 더 많은 혁신을 위해선 지식재산권은 보호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공정성이 의심되는 소송으로 경쟁자의 발목을 잡는 데 너도나도 혈안이라면 모두 손해보는 파국으로 치달을 뿐이다. 혁신선도자였던 미국에서 부는 사법 보호주의 바람을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