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아이언맨에 캐릭터 상품 옷 입힌 워커홀릭 마술사
2008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열린 영화 ‘아이언맨’의 개봉 행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기네스 펠트로 등 화려하게 차려입은 영화배우와 영화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초라한 모습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행사 시간 내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다가 행사가 끝나자 쓸쓸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만화잡지사인 마블의 최대주주로, 영화 제작까지 뛰어든 아이작 펄뮤터(69)였다.

‘엑스맨’ 시리즈와 ‘스파이더맨’ 등 마블의 캐릭터를 활용한 영화들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마블이 독자적으로 만든 영화는 ‘아이언맨’이 처음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지만 펄뮤터는 가짜 수염과 뿔테 안경을 이용해 변장한 채 행사장에 나타났다. 가장 가까운 지인조차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인지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을 정도다. 펄뮤터는 영화 제작은 물론 마케팅 과정에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아이언맨’은 개봉 첫주 전세계에서 1억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최고경영자(CEO)로서 독특한 펄뮤터의 성격과 경영능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장례식 사회자, 거리의 외판원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마블, 디즈니의 소비자 상품판매 부문 등 위기에 빠진 회사를 줄줄이 일으켜 세운 비결은 무엇일까.

○무일푼 이민자에서 자수성가

펄뮤터는 세계에서 가장 사진을 구하기 힘든 CEO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금도 포천 등 주요 미국 언론매체에 올라와 있는 그의 사진은 20여년 전인 1985년 포브스에 실렸던 것이다. 최근 사진은 지인들이 사적으로 찍은 것만 있다. 생애를 통틀어 한 번도 언론매체와 공식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성격은 그의 성장 배경이 일반적인 CEO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1943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펄뮤터는 1967년 ‘6일 전쟁’으로 불리는 3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직후 미국으로 이민을 와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의 수중에는 250달러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가 사용하는 영어에는 지금도 이스라엘 억양이 강하게 배어 있다. 이는 그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이유로 분석되기도 한다.

무일푼이었지만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덕분에 펄뮤터는 뉴욕에서 유대인 장례식의 사회를 맡을 수 있었다. 결혼한 뒤 그가 벌인 최초의 사업은 길거리에서 장난감과 미용용품을 판매한 것이었다. 사업과는 별도로 한계기업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얻는 요령을 익히기도 했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독학으로 재무제표를 보는 법과 투자 타이밍을 잡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장난감 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펄뮤터는 장난감 회사 오드랏의 최대주주가 된 뒤 회사를 약국체인인 리브코에 팔아 이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마블의 캐릭터들을 모델로 장난감을 만들던 토이비즈를 사들였다. 마블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과감한 변신으로 마블 부활 이끌어

1996년 파산위기에 처한 마블을 인수했을 때 펄뮤터가 마블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아이언맨, 엑스맨 등 마블의 주요 슈퍼히어로 캐릭터들도 관심 밖이었다. “마블 캐릭터를 이용한 액션피규어(action figure·동작 인형)를 팔 수 있겠다”는 것이 회사 인수의 유일한 이유였다.

그는 이전까지 만화잡지 판매에 주력하던 회사를 전혀 다른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쇠퇴가 불가피한 잡지 및 만화책 판매 등을 과감히 정리하고 캐릭터의 가치를 이용한 관련 파생사업에 집중한 것이다.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을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부활시키는 데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

1990년 ‘캡틴아메리카’를 영화로 만들었지만 저예산의 한계에 부딪혀 실패한 적이 있는 마블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펄뮤터의 접근 방식은 달랐다. 영화사에는 캐릭터만 제공해 로열티를 받고, 영화가 흥행하면 회사는 완구 판매 등 캐릭터 사업에 집중한다는 전략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엑스맨 시리즈는 2000년 ‘엑스맨1’을 시작으로 5편의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이런 전략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성공으로도 이어져 2008년 마블이 ‘아이언맨’을 독자 제작하는 원동력이 됐다.

마블의 성공에 주목한 월트디즈니사는 2009년 12월 마블을 42억4000만달러에 인수했다. 회사를 디즈니에 넘겼지만 펄뮤터는 여전히 마블 CEO로 남아 있다. 그는 디즈니의 소비자 상품판매 부문까지 맡고 있다. 인수대금을 현금이 아닌 디즈니의 주식 250만주(지분율 3%)로 받으며 경영에 관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로는 타계한 스티브 잡스에 이어 두 번째로 지분이 많다.

○디즈니에서의 도전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한 이후 펄뮤터의 독특한 경영스타일은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디즈니의 소비자 상품판매 부문 주요 책임자들을 모두 갈아치운 것이 단적인 예다. 이전까지 해당 부문을 맡았던 앤디 무니 전 CEO는 ‘백설공주’ 등 기존 캐릭터에 집중했다. 로열티 계약도 장기로 가져가며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펄뮤터는 마블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10대 소년들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열티 계약도 자주 갱신해 보다 높은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두 사람의 불화 끝에 무니 측 경영진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인수한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기존 디즈니 직원들 사이에 터져나왔다. 피인수 기업에 인수 기업의 경영방침이 관철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디즈니 소비자 상품판매 부문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5% 늘어난 2억9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펄뮤터의 주장이 맞았음을 방증했다.

한편 마블은 올 여름 ‘어벤저스’를 통해 15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아바타, 타이타닉에 이어 역대 흥행성적 3위에 해당한다. 디즈니가 제작한 영화 중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이다. 마블 인수가가 너무 높다는 투자자들의 우려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수전노 워커홀릭?

지인들을 통해 전해지는 CEO로서 펄뮤터의 모습은 ‘지독한 원가절감’과 ‘일 중독’으로 요약된다. ‘아이언맨’에서 중요한 조연인 공군 중령 제임스 로드 역이 1편 테렌스 하워드에서 2편 돈 치들로 바뀐 것이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시리즈의 일관성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출연료를 아끼기 위해 배우를 경질한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펄뮤터는 “어차피 흑인 배우는 다 똑같아 보이지 않냐”며 교체를 주장해 인종차별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의 오랜 사업 파트너인 애비 아라브는 “펄뮤터는 사용한 종이 하나 그대로 버리는 법이 없다”며 “8개 조각으로 잘라 사용한 부분은 버리고, 나머지는 새로운 메모지로 사용한다”고 전했다. 펄뮤터는 마블 매각으로 백만장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개인 비행기가 아닌 상용기를 이용한다. 사용한 지 25년이 넘은 자동차를 아직 몰고 있다.

금욕적인 면모는 일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진다. 그는 휴식시간을 거의 갖지 않는다고 한다. 마블의 한 관계자는 “그의 정신은 언제나 준비돼 있으며, 항상 다음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동료는 “그는 전혀 눈길을 끌지 않으면서도 주변의 사물과 돌아가는 사건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고 전했다. 펄뮤터가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언론에 알려진 유일한 순간은 테니스를 즐길 때뿐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