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확대 방안이 속도를 내고 있다. 모임 측은 28일 금산분리 법안 관련 공청회를 연 데 이어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제조업체 의결권 제한,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등을 핵심으로 한 금산분리 강화 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되면 삼성생명 등 계열 내 보험사가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그룹은 지배구조가 뿌리째 흔들리지만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내부 지분은 고작 8.8%에 불과하다.

○“15조원 주식 인수할 곳이 없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지분은 17.6%다.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4.7%)를 비롯해 생명(7.5%) 물산(4.1%) 화재(1.3%) 등이 주요 주주로 올라 있다. 여기서 생명과 화재가 보유한 전자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는 게 모임 측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그룹이 전자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8.8%로 급감한다.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달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그룹이 전자를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 지분 교통정리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선 지주회사 전환 없이 지분 정리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가 생명과 화재가 보유한 전자 지분 8.8%를 인수하는 시나리오다.

이날 삼성전자 시가총액(176조원) 기준으로 해도 인수 대금만 15조5000억원가량이 들어간다. 에버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2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한꺼번에 매출의 5배가 넘는 자금을 조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금액이 워낙 커 외부 우호세력에 주식을 ‘파킹’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금융사의 삼성전자 지분을 통째로 인수할 수 있는 곳은 외국계 자본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지주회사 전환 비용은 더 커

삼성그룹이 자발적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어떨까. 모임 측은 그동안 금산분리 방침을 밝히면서 삼성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게 유리할 것이란 식으로 설명해왔다. 예컨대 에버랜드가 일반지주회사로 전환하고 그 아래 한쪽은 전자 등 제조업 계열사, 다른 한쪽은 보험 증권 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두라는 식이다. 이를 위해 금융계열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까다로운 지주회사 규제 때문이다. 지주회사가 자회사를 거느리려면 상장 자회사의 경우 지분의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는 40% 이상(금융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30% 이상, 비상장 자회사 50%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에버랜드가 전자 지분 20%를 취득하는 데만 35조2000억원이 필요하고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만드는 데도 최소 5조7000억원이 든다. 중간금융지주 전환 비용은 생명이 중간지주회사 역할을 한다고 보고 그 밑에 화재 증권 카드 지분을 30% 취득한다고 가정한 금액이다.

여기에 다른 제조 계열사 지분을 편입하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지주회사 전환 비용은 훨씬 더 커진다.

○물산의 지주회사 전환도 불가능

삼성전자의 3대 주주인 물산이 생명과 화재가 보유한 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 방안도 실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생명과 화재가 보유한 전자 지분 8.8%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15조5000억원의 자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분을 넘겨받게 되면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돼 다른 자회사 지분까지 추가 취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자산 총액이 1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 주식 가치가 자산 총액의 50%를 넘으면 원하지 않아도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물산의 지난해 자산 총액은 20조9219억원, 자회사 주식 가치는 10조700억원이다. 전자 지분 15조5000억원이 추가되면 자동으로 지주회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산은 자회사 지분규제를 맞추기 위해 전자 지분 7.1%를 추가 취득하고 현재 보유 중인 테크윈(4.3%) SDS(18.3%) 에버랜드(1.5%) 제일기획(12.6%) 종합화학(38.7%) 석유화학(27.3) 등 다른 계열사 지분을 법적 한도까지 늘려야 한다. 당장 계산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금액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 지주회사

주식 취득을 통해 다른 회사를 지배할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 자산 총액이 1000억원 이상이고 자회사 주식 가치가 자산 총액의 50% 이상이면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된다.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회사까지 둘 수 있다.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지분 20% 이상, 비상장 자회사는 지분 40% 이상을 취득해야 하며 자회사가 손자회사를 둘 때도 똑같은 비율이 적용된다. 증손회사는 손자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할 때만 허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