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색 山河…"개발 상처·분단 비극 녹여냈죠"
“어린 시절 동네 무당집을 자주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는 무당집의 화려한 색깔과 서늘한 분위기를 떠올리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정치·사회적인 풍자와 미감을 살려내는 데 무당굿만큼 화려하고 좋은 소재가 없는 것 같아요.”

29일부터 10월14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붉은 산수’화가 이세현 씨(45). 그는 “초기에는 개발시대 풍경에 역점을 두면서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닌 붉은색을 작업의 모티브로 즐겼지만 최근에는 무당들의 흥분과 엑스터시를 동시에 지닌 우리 고유색인 오방색을 중심으로 화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동안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겐 금기시됐던 붉은색으로 우리 산하를 강렬하게 그려왔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첼시예술대학원을 다니던 중 ‘과연 한국적인 그림은 무엇일까’ 고심하다가 분단의 비극성과 개발 상처를 붉은 산수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 스위스의 유명 컬렉터 율리 지그는 이씨에 대해 “분단 한국의 비극성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유일한 작가”라고 격찬했다. 이후 영국의 아스펙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를 비롯 유니언 갤러리와 스위스 미키윅킴 컨템퍼러리 아트 등 유명 화랑에 초대돼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다.

‘플라스틱 가든’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을 쓰고 바라본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오방색으로 그린 신작 ‘레인보우’ 시리즈와 조각 4점 등 25점을 내보인다. 현대적 산수화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재개발 지역 건물, 포탄 흔적, 군대 초소 등을 녹여내 분단 국가의 개발시대 아픈 흔적을 드러낸 작품들이다.

기존의 붉은 산수가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표현했다면 레인보우 시리즈는 동시대 아픔과 왜곡된 사회 현실을 강렬한 오방색으로 보듬는다. 레인보우 시리즈는 멀리서 보면 분재라는 거대한 형상 안에 인간의 욕심 때문에 망가져버린 우리 국토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2006년 이후 붉은 산수 그림을 150여점 그린 것 같다”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년 전 귀국한 것도 새 작업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고 했다.

“영국에 있을 땐 분단과 개발, 노스탤지어가 섞여 있는 한국의 자연을 담는 작업을 해왔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대도시 주변의 농촌은 공장, 창고, 모텔, 음식점 등 도시인들을 살리기 위한 온갖 부대시설로 전락해 황폐해지고 있어요. 제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의 욕심이 극에 달한 상태를 붓으로 잡아내기 때문에 내면에 잠재된 잔혹함의 몸짓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새로운 시도는 분재 회화에서 그치지 않고 조각으로 이어졌다. 부러진 각목, 망가진 마네킹, 녹슨 철사, 시멘트 조각 등 버려진 것들을 이어 붙이고 이를 고무 대야에 담아 ‘분재 조각’을 완성했다. (02)739-493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