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와 일본 중의원(하원)이 한국 정부에 대해 ‘독도의 불법 점거를 즉각 중단하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극우 성향의 왜곡된 역사관을 부끄럼 없이 한꺼번에 분출한 것이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해소할 탈출구도 막혀버렸다.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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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문전박대에 이어 총리와 의회까지 나선 일본의 ‘독도 불법 점거’ 주장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막장외교다. 일본의 적반하장이 한·일 관계를 ‘치킨게임’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일본 의회는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에 대해 항의하는 결의안을 민주당과 자민당 공명당 등 여야 의원들의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일본 의회가 독도 영유권 분쟁을 주제로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1953년 한국의 ‘이승만 라인’ 설정에 반발해 작성한 ‘일·한 문제해결 촉진 결의안’ 이후 59년 만이다.

중의원은 결의안에서 “한국이 일본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시설 구축을 강행해왔다”며 “한시라도 빨리 불법 점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결의문은 이어 “한국이 불법 점거에 근거해 독도에 취하는 어떤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이 없으며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일왕 사죄 요구와 관련해서는 “우호국 국가 원수의 발언으로는 매우 무례한 발언임으로 결단코 용인할 수 없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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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총리의 모순된 태도

노다 총리는 이날 오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중의원의 비난 결의안 내용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이날 오후 6시에 열린 긴급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노다 총리가 영유권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을 연 것은 처음이다.

노다 총리는 모두 발언을 통해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 나름의 역사적 증거들도 장황하게 늘어놨다. 그러고는 “한국은 (일본과) 가치를 공유하는 소중한 파트너이며 주장에 차이가 있어도 서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냉정한 대처’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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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열도를 언급할 때도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법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하다가, 센카쿠열도에 대해서는 “분명히 일본 고유의 영토이므로 영유권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표변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의 어깃장인 셈이다.

○경제 분야로 번질 우려

중의원 결의안 자체는 특별한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러나 입법부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일본 행정부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올해 안에 시작하기로 했던 한국 국채 매입 방안은 당분간 유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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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재무성이 한국 국채를 매입하기로 했던 방침을 유보하는 방향으로 검토에 들어갔다”며 “현 시점에서 한국 국채를 사들이는 것은 국민의 이해를 얻기 어렵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류로도 불똥이 튀었다. 야마구치 쓰요시(山口壯) 외무성 부대신(차관)은 이날 일본의 한 방송에 출연, 독도 수영 행사에 참석한 탤런트 송일국 씨에 대해 “미안하지만 앞으로 일본에 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국의 정부 부처 차관이 특정 국가 배우의 행동을 놓고 보복성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