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경기 부진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 지분을 사들인 뒤 구조조정 등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기업 사냥꾼’이라는 과거의 악명과 달리 최근에는 경영진에 협조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들도 많아 오히려 이들의 참여를 반기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헤지펀드 코벡스매니지먼트는 식품 제조업체 랄코프홀딩스의 지분 5.13%를 확보한 후 회사를 매각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코벡스매니지먼트는 과거 칼 아이칸의 헤지펀드 아이칸엔터프라이즈의 부회장을 지낸 키스 마이스터가 2010년 세운 헤지펀드다. 이 펀드는 6월 말 1.1%에 불과했던 랄코프홀딩스 지분을 최근 5.13%로 크게 늘렸다.

코벡스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회사 매각이나 다른 식품회사와의 합병, 펀드 관계자들의 이사회 참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랄코프홀딩스는 소매업체들에 자체 상표인 프라이빗브랜드(PB) 식품을 공급하는 업체로 최근 경기 부진으로 경영이 악화됐다.

유명한 행동주의 투자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은 쇼핑몰 운영업체인 제너럴그로스프로퍼티(GGP)를 새 타깃으로 삼았다. 그는 경쟁입찰로 회사를 매각할 것을 종용하는 편지를 GGP 이사회에 보냈다. GGP의 대주주인 브룩필드애셋매니지먼트가 회사를 상장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막기 위한 조치다.

애크먼 회장은 지난해 포천브랜드에 골프공 업체 타이틀리스트의 매각을 요구해 한국의 휠라코리아 컨소시엄이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록터앤드갬블(P&G) 지분 20억달러어치를 취득했다.

P&G 측은 애크먼의 참여를 구조조정과 주가 부양을 위한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다. 애크먼은 지난해 백화점 업체 JC페니의 지분을 사들인 후 애플스토어 성공 신화의 주인공인 론 존슨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기도 했다.

로펌 굿윈프록터의 조지프 존슨 변호사는 “미국 대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변화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을 설명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