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환경은 예측불허…'즉흥연주'하듯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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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master 스캣경영 (2)
고도의 일체감·집중력으로 빠르게 조화 찾는 재즈밴드
단시간내 애플 따라잡은 삼성
사전계획 없는 긴박한 상황에도 인력 등 조직 저력 최대 활용
고도의 일체감·집중력으로 빠르게 조화 찾는 재즈밴드
단시간내 애플 따라잡은 삼성
사전계획 없는 긴박한 상황에도 인력 등 조직 저력 최대 활용
세계 조직이론 분야의 석학인 칼 웨익 미시간대 교수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와 기회가 수시로 발생하고 신속한 대응이 절박한 ‘고속환경(high-velocity environment)’에서는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밴드와 같은 유연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휘자와 미리 준비된 악보도 없이 모든 연주자들이 각자 멜로디를 연주하며 다른 연주자들과 조화를 이룬다. 한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즉흥적인 멜로디나 박자로 차고 나가면 나머지 연주자들은 즉각 알아서 받쳐주며 전체적인 조화를 다시 찾아간다.
웨익 교수는 이러한 조직을 ‘고신뢰조직(high-reliability organization)’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기에는 무질서하고 무계획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구성원 상호 간 고도의 일체감과 집중력을 가지고 상황의 진행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다. 오케스트라나 대기업 조직과는 대조적이다. GM, 코닥, 소니 등 전통적인 초우량기업들이 무너져간 초고속환경의 불확실성과 급변성.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대참사를 초래하는 지금은 재즈밴드가 연주하는 ‘스캣’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다.
# 변형·적응·창조 스캣의 특징
문제는 ‘어떻게(how)’다. <그림>은 스캣을 ‘사전 계획의 활용’과 ‘스캣 아이디어의 원천(Source)’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진다.
‘변형 스캣(transformational scat)’은 현재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는 사전계획이 수립돼 있지만 그대로 실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때 기존 계획을 신속하게 수정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기존 계획의 수정은 자신을 비롯한 조직 내부로부터 또는 고객의 요구나 경쟁자의 제안 등 외부 아이디어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스캣이다. 개그 프로그램이나 연극 무대에서 시도되는 애드리브가 대표적인 예다.
‘적응 스캣(adaptive scat)’은 현재 상황에 대비해 수립한 계획이 없거나 있으나마나한 경우에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신속하게 적응하는 형태의 스캣이다. 적응 스캣도 변형 스캣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상황판단’이 중요하다.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의사결정 기준이 될 사전 계획이 없다는 것.
올해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누르고 32%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를 굳히고 있는 삼성전자의 오늘은 적응스캣의 결과다. 2009년 말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시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글로벌 시장에서 쌓아올린 아성을 지키기 위해 업그레이드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후에는 쫓기듯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늦게 추격에 나선 삼성전자가 외부 협력업체 간 활발한 상호협력과 자원의 집중을 최단시간에 이끌어내고, 상당수의 연구·개발 인력을 긴급히 투입하는 등 긴박한 상황에서 조직이 가진 저력을 최대로 활용한 역량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지도를 바꾼 글로벌 수준의 스캣이다.
‘창조 스캣(creative scat)’은 사전에 수립된 계획이 없거나 있으나마나한 경우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다. 적응 스캣의 아이디어가 외부의 요구에 의한다면 창조 스캣은 스스로 창출한 영감-아이디어에 의해 정면으로 상황을 타개한다.
1895년 겨울,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 빌헬름 뢴트겐은 어떤 광선도 통과할 수 없도록 두꺼운 마분지로 밀폐된 크룩스관을 의외로 투과하는 정체 모를 선을 발견한다. 이 발견으로부터 뢴트겐은 연속적인 창조 스캣을 발휘한다. 먼저 그는 마분지를 통과하는 이 불가사의한 선을 나무판과 헝겊 그리고 금속판을 차례로 놓으며 실험을 계속했다. 뢴트겐은 정체모를 선 앞에 사진 건판을 놓고, 아내를 설득해 손을 넣도록 했다. 그러자 건판에 뼈가 뚜렷이 보였고, 그 둘레로 근육이 엷은 윤곽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과학의 역사 한 부분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협상의 귀재라 일컫는 중국인들이 잘 쓰는 비법 중 하나로 출기불의(出其不意)전략이라는 게 있다. 협상과정에서 요구조건이나 제안 등을 갑자기 바꾸어 상대방을 당황케 함으로써 굴복이나 양보를 받아내는 전략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새로운 요구의 갑작스러운 제기, 중요 일정 변경, 지저분하고 협소한 미팅장소 선택, 협상 대표의 갑작스런 교체 등이 있다. 협상이 기대했던 대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국면타개를 위해 사용하는 전략. 그 자체가 창조 스캣적인 성격이 많으며, 또 이러한 상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휘말리지 않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방어적인 창조 스캣이 필수적인 전략이다. 상대방의 수를 미리 알 수 없는 창조 스캣의 장군, 멍군인 셈이다.
# 스캣 이끌어내는 세가지 사고방식
스캣을 해야 할 긴박한 시점에서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만 보는 사람과 즉각 실행에 옮기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과는 평소 사고방식에 따라 갈린다. 공식적인 전략 계획도 따로 없이 한 달에 한 건꼴로 신제품을 내놓는 희한한 기업이 있다. 예의 조직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중요한 사실 하나가 밝혀졌다. 시장 정보에 대해서만큼은 ‘먹어도 먹어도 성이 차지 않는 엄청난 식욕’의 소유자였다. 어떠한 계획도 없는 이 기업을 조정하고 있는 것은 실시간 시장정보의 흐름이었다. 말하자면 이 기업은 매일 스캣 의사 결정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격변하는 시장상황에서 현재의 위치와 진행방향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두려움 없이 스캣을 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스캣의 적합성을 결정하는 밑거름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가 강력한 ‘자이로스코프’를 머리 안에 장착하고 항상 갈고 닦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인도의 주가드경영의 핵심인 ‘브리콜라주(bricolage)’는 ‘무엇이든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일을 되도록 하는 것’ 혹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통합해서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브리콜라주는 ‘곤란한 상황이 아니면 지혜를 짜내지 않는다’는 인간의 일면을 조명하고 있다. 일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이 넘치도록 준비된 상황에서는 머리를 쥐어짜면서까지 노력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기회를 잡았지만 뒷받침해줄 여력이 없어 끝내 포기를 해야만 했던 경험을 대부분의 기업들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성과를 보듯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온 한국기업들은 브리콜라주에 천성적으로 강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황선홍 선수의 첫 번째 골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현재 K리그 포항스틸러스의 감독으로 활약 중인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평소에도 페널티박스 안에서 순간적인 찬스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곤 해요. 그러다 보면 실제 경기에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더군요.”
불확실한 미래 상황을 여러 각도의 시나리오로 가정하고 이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시나리오적 사고’. 다양하게 생각해둔 시나리오를 통해 경영자나 의사결정자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속 기회와 위협의 영역에 관한 정신적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시나리오적 사고가 스캣 능력을 향상시키는 이유는 앞서 황선홍 감독의 조언처럼 미래 발생 가능 상황에 대한 멘탈 트레이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래 상황을 결정하는 불확실성 요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학습하고 이에 따른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정신적 지도가 작성되고, 간접적이지만 상황 대응훈련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상황이 시나리오와 꼭 같지 않다 하더라도 유사 시나리오를 활용하거나 몇 개의 시나리오 대처 방안을 통합해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권업 <계명대 교수>